제 2장
“성정이 크게 변했다고…….”
종완이 작은 소리로 한차례 반복하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홉 살 공주를 아내로 요구한 이 일은 그다지 그가 할 것 같지는 않은 짓이었다.
임사는 종완이 잘 들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 한 시진만 지나면 성으로 들어갈 것이었고, 임사는 곧 가야하니 종완은 감히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마음속의 의심과 염려를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려 임사의 ‘말’을 들었다.
임사가 글을 썼다.
[연초, 삼황자가 또 한바탕 병이 나서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삼황자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고, 올해에 서른넷이 되어도 대를 이을 아들 하나 없으니, 태의원의 의사들은 감히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몇 년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종완은 눈살을 찌푸렸다. 삼황자도 죽을 것이다.
말하자면 황상도 재수가 없다. 앞의 두 황자도 모두 요절했으니 말이다. 첫째 황자는 열두 살에 죽었고, 둘째 황자는 세 살에 죽었고, 그 사이에 공주 둘도 죽었다. 어렵사리 삼황자를 얻었는데 날 때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아 그렇게 조심스럽게 기른 것이 지금이니, 말을 하지 않아도 죽을 것이다.
금상은 올해 육십이 다 되어 가는데, 슬하에 삼황자만 남아있고 황손 하나 없으니, 삼황자를 제외하면 스물두 살의 사황자 선영(宣璟)과 스무 살의 오황자 선경(宣琼), 이 두 사람만이 조건을 모두 갖춘 아들이었다. 1
임사는 망설이다가, 글을 쓰지 않고 천천히 수화를 하였다.
[여러 해 전에 스승이 말하기를, 금상의 황위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명백하지 않고 하늘이 내린 명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 천하를 배울 수 없으며 천명을 억지로 바꾸면 자손의 행복에 반드시 해를 입힌다. 그러므로 황상의 아이는 대다수가 살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종완은 그다지 개의치 않고 말했다.
“몇 명은 살아남지 않았나? 성년이 될 때까지 건강한 황자가 둘이나 되는데, 충분하지.”
임사는 눈썹을 찡그렸다.
“네 뜻이 뭔지 알아.”
종완은 미소 지었다.
“황상의 자손이 연이어 요절하니, 그가 선서와 선유를 보고 좋아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는 거잖아. 다른 것을 생각하면, 황상이 올해 갑자기 우리를 입경시킨 것은 팔 할은 이것 때문일 거야.”
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완은 그를 달래며 말했다.
“그래서 오기 전에 내가 이 일에 기름을 붓고 초를 쳐서 선서에게 말했더니 그는 놀라서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어. 오는 길에도 걱정이 쌓이고 쌓여서, 사람이 살이 내리고 두 눈은 생기가 없고 안색은 몹시 피로하니 알현할 때 황상이 그의 모습을 보면 반드시 마음을 놓을 거야.”
임사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꼭 와야 했어.”
종완은 담담히 말했다.
“우리가 아무리 피해도 소용이 없고, 황상은 자신이 보아야만 믿을 수 있을 테니 그 둘은 그냥 놔둘 거야.”
임사는 살짝 마음을 놓았다.
임사는 또 종완의 몸에 대해 물었다. 두 사람이 당년 헤어질 때 종완은 병으로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해 임사는 줄곧 걱정하고 있었다.
임사는 종완의 맥을 짚어보고는 손짓했다.
[엄 숙부 말로는 그 후로 병의 뿌리를 얻어 날이 추워질 때마다 반드시 병이 재발한다고 하던데, 지금 벌써 입동이 되었으니…….]
“작은 결함일 뿐이야. 이미 나았다는 건 별 차이 없어.”
종완은 손을 내저었지만 생각은 결코 제 몸에 있지 않았다.
“네가 방금 말한…….”
임사는 조용히 기다렸다.
“네가…….”
종완이 아랫입술을 사려물었다.
“네가 그의……성정이 크게 변했다고…….”
주제가 한 바퀴 돌았다가 다시 욱사로 돌아왔다.
종완은 열세 살에 욱사를 알게 되었고, 동창으로서 삼 년, 그 후에 또 반년을 함께 지내 그를 잘 아는 편이었는데, 그는 이 사람이 어떻게 변했을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임사는 종완이 믿지 못할 것을 알아, 다시 종이를 가져다 붓을 날렸다.
[당신들이 떠난 첫해는 영왕의 일을 마무리하느라 경중의 몇 채가 평안했습니다. 1년이 지나니, 멀쩡하던 욱 소왕야가 갑자기 성상께 청을 올려 황상이 그의 세자 위를 박탈해 달라 했습니다.]
종완은 아연해져서 한참 뒤에 말했다.
“어……어째서?”
안국 장공주가 욱사를 낳은 후 다시 임신을 할 수 없게 된 까닭에 황상은 욱 왕야가 자식이 부족함을 가엾게 여겨 첩을 몇 명 내렸고, 욱 왕야에게는 서자가 두 명 있었다. 욱사가 만약 세자 위를 내려놓으면 서자가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임사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종완은 억지 웃음을 지었다.
“먼저 황상이 그를 때려죽일지 말지 한 것 말고, 공주는?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어? 그를 어떻게 꾸짖은 거야?”
임사를 글을 썼다.
[공주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고, 황상은 격노하여 욱 소왕야를 궁에 연금시키고 교육하여 두 달 만에 풀어주었습니다.]
종완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그는 궁에서 자랐으니 이건 무슨 가택연금인가.”
임사는 계속했다.
[이 일 이후 욱 소왕야는 다시 북부 변경으로 보내달라고 자청했습니다.]
“…….”
종완은 더할 나위가 없어 감탄했다.
“대단하네. 이건 그의 아버지를 위해 모반하려는 건가?”
선황제가 개국할 당시 여섯 명의 이성왕을 봉했으나 욱왕부만 남았다. 욱가는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도 교류하고 재물운도 있었다. 하지만 이성왕으로서 민감한 일도 많았는데, 욱왕은 군신의 도리를 잘 알고 군사상으로는 언제나 미움을 피하였으나, 욱사가 뜻밖에도 이 금기를 깰 줄은 생각지 못했다.
[욱 왕야께서는 이날 왕인(王印)을 가지고 입궁하여 대전 밖에서 한 시진 동안 무릎을 꿇었는데, 아무도 말리지 못해 결국 황상께서 친히 오셔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2
종완은 “일단 공주의 노여움을 사고, 또 욱 왕야의 역린을 건드리다니 그는 명줄이 긴 게 불만인 걸까…….”하며 중얼거렸다.
임사는 계속했다.
[명줄이 길다고 불만인 겁니다.]
종완은 하는 수 없이 웃었다.
임사는 잇달아 말했다.
[1년이 지나고, 안국 공주는 의도치 않게 욱 소왕야가 한식산(寒食散)을 먹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3
“뭐?!”
종완의 얼굴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가 뭘 먹었다고?”
임사는 ‘한식산’이라는 세 글자 위에 동그라미 하나를 쳤다.
“그가…….”
종완은 이를 갈았다.
“그는 어찌 직접 비상을 먹으러 가지는 않았대? 그 뒤에는 어떻게 됐지?”
임사가 글을 썼다.
[공주는 크게 노하여 욱 소왕야를 족히 반년을 가두었습니다. 욱 왕야는 황명을 청해 경중의 모든 약방과 교외의 모든 도관을 털어 몰래 이 약을 팔던 많은 간악한 자들을 장살(杖杀)하였고, 반년 후에 욱 소왕야께서 건강을 회복하신 후에야 비로소 그만두셨습니다.]
임사는 생각하고는 계속해서 적었다.
[다시 1년이 지나고, 욱 소왕야께서는…….]
…….
잠시간 먼저 쓴 것을 끝맺지 못했다.
종완은 가만히 바라보다, 미간을 점점 찌푸렸다.
방금 전까지 그는 욱사가 어째서 아홉 살 된 혜양 공주에게 구혼하는 일을 저질렀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그에게는 정말 지나친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는…….”
종완은 중얼거렸다.
“그는 요 몇 년 동안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뭐가 못마땅해서 이렇게 죽음을 자초하는 건데?”
욱사는 안국 장공주의 외아들이었다. 선황제가 작고한 해에 있었던 일로, 그때 안국 장공주는 잉태 도중 국상을 치렀고, 애도의 마음이 지나쳐 아이를 자칫하면 지켜내지 못할 뻔 했다. 이후 공주는 다시 선제의 능을 지키러 갔고, 임신 기간이 다 가도록 귀경하지 못해 황릉 별장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 후 다분히 몸이 상하여 다시 아이를 갖지 못했다.
공주는 이와 같은 아들을 당연히 보배처럼 아꼈고, 태후와 금상도 이 아이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 욱사의 이름과 자는 모두 금상이 내린 것이며 욱사가 첫 돌을 맞았을 때 왕세자로 봉해졌고 두 살 때 궁에 들어와 생활하여 황자와 다름이 없었다.
황자와 다름이 없지만 또 같지는 않은 것이, 황자들은 앞으로든 뒤로든 힘을 감추고 태자 위를 다투어야 했지만 욱사는 유일한 적자의 신분이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자였고 부귀를 겸비할 명을 타고나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가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자신을 못살게 구는 거지?
종완의 기억 속에서, 욱자유는 천성이 매우 뛰어났다.
다른 사람에 비해 욱사는 조금 괴팍할 뿐이고,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미간은 항상 마치 흐트러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듯 동요하는 법이 없고, 손속이 매서운 욱 왕야와 다르게 욱사는 행실이 공명정대했다. 군자는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함을 잘았다. 그렇지 않았으면……종완도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임사는 종완이 줄곧 넋이 나가있는 것을 보고 붓을 들어 글씨를 썼다.
[욱 소왕야께서는 요 몇 년 동안 마치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처럼 행동이 괴팍하고 성정이 음흉합니다. 지난 해 대리사에 들었는데 온갖 수법이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저는 한번은 일처리를 잘못하여 그의 손에 떨어졌고, 하마터면 그에게 직접 죽임당할 뻔했습니다.] 4
종완은 내심 두려웠다.
임사는 종완이 염려할까봐 서둘러 글을 채워 넣었다.
[무사했습니다. 저는 사황자를 미리 알게 되었는데, 사황자가 저의 일을 형부(刑部)로 넘겨 작은 일로 만들고 약간의 조사만 하고 풀어주었습니다.]
사황자 선영, 임사는 요 몇 년 간 줄곧 그의 집에 숨어있었다.
임사는 종이 위에 거듭 글을 써나갔다.
[욱 소왕야께서는, 옛 정을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종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종완은 창가에 기대어 한참을 침묵하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5년 전에 그는 왜…….”
임사는 의아하게 종완을 보았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종완은 천천히 말했다.
“4년 전에 검안부 지주 심복림이 직무를 아뢰러 상경했을 때, 내 이름을 걸고 욱왕부에 손을 내밀러 갔는데, 그는……정말로 일처리를 도와줬어.”
임사는 이 일을 상기해내고, 글을 썼다.
[이상합니다. 아니면 당시 욱 소왕야가 이렇게 미치지는 않은 것 아닐까요?]
마침내 종이가 다 떨어져, 임사는 수화를 했다.
[말하자면, 이 일은 주인님 당신과 욱 소왕야 사이의 소문을 사실화한 것입니다.]
종완은 가슴에 근심을 가득 품다가 눈을 들었다.
“아?”
임사가 손짓했다.
[바로 이 일 때문에, 경중 사람들이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을 믿게 되었는데, 모두들 욱 소왕야가 정말로 당신에게 반해서 오직 당신만을 위해 백방으로 끌려 다닌다고 생각합니다.]
종완은 잠시 가만히 있다 말했다.
“다시 말해 볼래?”
임사 이 벙어리는. 입으로 말을 꺼낼 수가 없어 재차 손짓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일 때문에, 경중 사람들이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을 믿게 되었는데, 모두들 욱 소왕야가 정말로 당신에게 반해서 오직 당신만을 위해 백방으로 끌려 다닌다고 생각합니다.]
임사는 종완이 그 수화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종이 한쪽을 끌어다 여백을 찾아 글씨를 쓰려했으나 종완이 웃으며 저지했다.
“네 수화는 모두 내가 가르친 것인데 내가 모르겠어?”
종완은 눈꼬리를 작게 휘며 웃음을 참았다.
“나는 네가 다시 한 번 ‘말’하는 게 듣고 싶어.”
임사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곰곰이 생각하였고 속에서는 또 불편함이 일었다.
종완은 도리어 여상한 기색이었다.
임사는 생각하고는 다시 손짓했다.
[경중에 막 떠도는 말이 들려왔을 때, 하루 종일 떠들썩하여 그 동안 모두가 이것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욱 소왕야가 이 떠도는 말을 언뜻 들은 후에 화가 나서 한바탕 앓았다고 들었습니다.]
종완은 기침을 하고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임사는 또 손짓했다.
[사황자의 말을 듣기로는, 황상이 어느 날 벌떡 일어나 이 일이 진짜인지 부러 욱 소왕야께 물었다고 합니다.]
종완은 사레가 들렸다.
임사는 종완의 등을 두드려주며 계속했다.
[그날 욱 소왕야께서는 새파래진 얼굴로 궁에서 나와 저택으로 돌아와서는 밥을 먹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장공주께서는 그가 또 황상께 대든 줄 알고 밤중에 일부러 그를 공주부로 불러 묻는데, 어림짐작으로 이것에 대해 물으니 공주부에서 나왔을 때 욱 소왕야의 얼굴이 검게 되어있었습니다……아주 검어서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였는데, 그의 용모가 영준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주 사람을 지리게 했을 겁니다]
종완은 웃음을 참느라 배가 아팠다.
임사가 말했다.
[황상과 공주는 얼굴을 맞대어 소왕야께 물을 수 있었지만, 당연히 다른 이들은 소왕야의 모습을 보고 그의 면전에서 감히 당신에 대해서는 반 글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임사는 침을 삼키고 손짓했다.
[유언비어가 너무 많아서인지 들리는 말을 너무 생생하게 많이 들어서인지 무뎌졌는데, 유언비어가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욱 소왕야께서는 깨끗하게 타버린 재와 같이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다시 해명하지 않으셨고……거의 머리로 이 일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임사는 생각하고는 말했다.
[아마도 너무 많이 들어서 자신도 모두 믿었던 거겠지요. 경중에 감히 공개적으로 이 일을 꺼내들 사람은 없지만, 강남 쪽에서는 민풍이 개방적이라 이 일을 편곡하여 연극하는 이가 있어 욱 소왕야께서는 평복을 하고 나가 여러 해를 돌아다니셨습니다. 소주(苏州)의 화방에서는 밤새 두 사람의 연극을 듣고 돌아 갈 때 상도 주셨습니다.]
종완은 차마 보기 힘든 처참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감히 욱사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