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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년만리멱봉후17

제 4장 종완은 일순 자신의 꿈이 아직 깨지 않은 줄 알았다. 욱자유는 많이 자랐고 미간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소년 시절 미간에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던 그 우수는 난폭한 기운으로 변해 이 영준한 얼굴에 다분히 음험하고 흉악한 기운을 더했다. 종완은 속으로 내가 이것이 잠이 깬 것인지 아닌지 생각했다. 만일 잠에서 깬 것이라면 어떻게 욱자유를 만난 것인지, 만일 꿈을 꾸는 것이라면……어떻게 이 사람을 이렇게 뚜렷하게 볼 수 있을까. 종완은 열이 올라 두 귀에서 윙윙대는 소리가 나고 머릿속이 흐렸으며, 일어서려고 몸부림쳤으나 얼어붙은 양 손발은 마치 납이 든 것 같았다. 그는 약하게 한숨을 쉬고 가마에 몸을 지탱했으나 여전히 제대로 서지 못했고, 힘을 쓰지 못하는 두 다리는 약해서 그대로 넘어졌다. 종완은 눈 덮인 .. 2020. 6. 5.
제 3장 “만수절 뒤에, 나와 함께 검안으로 돌아가자.” 곧 도성에 들어가게 되니 종완은 임사에게 분부했다. “끝내지 못한 일이 있으면 미리 처리해둬.” 임사는 멍해졌다가 손짓했다. [저는 갈 수 없습니다. 경중에 남아 당신을 돕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종완은 고개를 저었다. “선서와 선유를 본 후 황상은 완전히 마음을 놓을 것이고 네가 남아있어도 별로 필요하지 않을 테니 우리랑 돌아가는 게 나아. 이후에는 하늘 높고 바다 넓을 것이니 나를 따라 편안히 살아.” 임사의 반박을 기다리지 않고 종완은 다시 말했다. “너도 말했지만, 욱사는 옛정을 생각하지 않아. 그가 지난번에는 너를 눈감아 주었다지만 다음은? 사황자와 오황자가 혹여 맞서게 될 수도 있어. 오황자는 욱왕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니 사황자라고 해서.. 2020. 6. 4.
제 2장 “성정이 크게 변했다고…….” 종완이 작은 소리로 한차례 반복하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홉 살 공주를 아내로 요구한 이 일은 그다지 그가 할 것 같지는 않은 짓이었다. 임사는 종완이 잘 들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 한 시진만 지나면 성으로 들어갈 것이었고, 임사는 곧 가야하니 종완은 감히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마음속의 의심과 염려를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려 임사의 ‘말’을 들었다. 임사가 글을 썼다. [연초, 삼황자가 또 한바탕 병이 나서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삼황자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고, 올해에 서른넷이 되어도 대를 이을 아들 하나 없으니, 태의원의 의사들은 감히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몇 년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종완은 눈살을 찌푸렸.. 2020. 6. 3.
제 1장 종완이 재채기를 했다. “가을에 들어섰으니, 종 도련님 감기에 걸리신 거 아닙니까?” 안채에서 이곳의 지현(知县)이 성심성의껏 예의를 다하며 말했다. “종 도련님이 매일 관부 안팎을 위해 수고하시니 본인의 건강에 유의하셔야지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오곡잡량을 먹으니 어찌 병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종 도련님이 처음 검안에 오셨을 때 풍토가 맞지 않아 1년은 족히 앓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추분이 지나가고 한로가 오니…….” 지현의 문장이 장황하게 보양의 길을 논하기 시작하자 종완은 저절로 넋을 놓았지만 얼굴은 여전히 온화하기 그지없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꼬박 반주향이 지나고 난 후에야, 종완은 비로소 지현 나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소관은 오랫동안.. 2020. 6. 2.
서장_쐐기(楔子) 검안왕부(黔安王府) 밖의 대로에는 앞뒤로 열 몇 대의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고, 종복들은 모퉁이에서 문으로 들락날락하면서 바쁘게 짐을 들어 수레에 실었다. 길 건너 주점에서 몇 사람이 머리를 내밀고 기웃거리며 수군거렸다. “어인 일이지? 왕야 댁에서 무얼 하는 거야?” “석 달만 더 있으면 만수절이니, 왕야 댁의 주인 몇 분이 상경하여 생신을 축하하러 간다 들었소.” “그럼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건가?” “허튼소리! 생신을 축하하고 나서 돌아오지 않으면 뭐하겠어?!” “만수절이 해마다 있는데 어째서 올해는 간다는 거지?” “그걸 내가 어찌 아나!” “일하러나 가!” 주점의 주인은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손뼉을 한 번씩 쳐서 사람을 몰아내고, 웃으면서 손수 손님에게 차를 따랐다. “대접이 변변치 못합니다.” .. 2020.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