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완은 일순 자신의 꿈이 아직 깨지 않은 줄 알았다.
욱자유는 많이 자랐고 미간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소년 시절 미간에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던 그 우수는 난폭한 기운으로 변해 이 영준한 얼굴에 다분히 음험하고 흉악한 기운을 더했다.
종완은 속으로 내가 이것이 잠이 깬 것인지 아닌지 생각했다. 만일 잠에서 깬 것이라면 어떻게 욱자유를 만난 것인지, 만일 꿈을 꾸는 것이라면……어떻게 이 사람을 이렇게 뚜렷하게 볼 수 있을까.
종완은 열이 올라 두 귀에서 윙윙대는 소리가 나고 머릿속이 흐렸으며, 일어서려고 몸부림쳤으나 얼어붙은 양 손발은 마치 납이 든 것 같았다. 그는 약하게 한숨을 쉬고 가마에 몸을 지탱했으나 여전히 제대로 서지 못했고, 힘을 쓰지 못하는 두 다리는 약해서 그대로 넘어졌다.
종완은 눈 덮인 바닥에 주저앉아 욱자유의 검은 장화를 바라보며 자신이 또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꿈속은 10년 전으로, 종완이 반독으로 입궁한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당시 사 노태부에게 함께 가르침 받은 것은, 나이가 엇비슷한 종완과 욱사, 그리고 사황자와 오황자 네 명이었다.
이 네 사람 가운데 종완은 비록 반독이었지만 문장이든 글을 짓는 재능이든 무엇을 막론하고 전부 가장 뛰어나서 귀한 집 자식들 한 무리를 깔아뭉갰다. 문장이 뛰어난 것에 단지 태부만 좋아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숭안제가 이따금씩 그들을 가르칠 때에도 거듭 칭찬하였는데, 숭안제는 그 해 종완에게 농담으로 중서성에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중서성에 들어가면 천자의 비서 노릇을 하며 천자가 내릴 명령의 초고를 쓴다.
종완은 당시 소년의 의기에 차서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음을 조금도 몰랐고 자신이 감히 황제에게 이와 같은 특별대우를 받았다며 영안부도 우습게 여겼는데, 황제에게 중서성에 자신에게 줄 의자를 맡아두고 향시가 있는 해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그는 자연히 황궁에 들 수 있다 호언했다.
숭안제는 비록 종완이 정말로 소년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할 것이라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이 선연하고 눈부신 소년의 의기가 마음에 들어 웃으며 종완이 청한 대로 내일 영왕에게 의자하나를 중서성으로 보내 종완에게 줄 자리를 마련해 놓으라 하겠다 하여 사황자와 오황자 두 사람의 이가 근질거리게 했다.
오황자 선경은 종완을 질투하고 증오하여 음험한 술수만이 떠올랐으나 겉으로는 위선적으로 종완에게 인사치레를 했다. 사황자 선영은 성미가 급하고 솔직하여 어떤 불만이 있으면 모두 직접 맞대어 왔으므로 그날 술자리에서 종완을 연거푸 닦달하여 자신의 주량을 믿고 종완을 취하게 만들었다.
종완은 취해도 예에 어긋나는 행동거지를 보이지 않았고 다만 조금 정신이 흐려졌을 뿐이었는데, 궁을 나가는 길에 그는 길을 분간하지 못하고 머리도 어지러워 곧 한 정자에 앉아서 쉬었다.
그날, 종완은 욱사와 조우했다.
어쩌면 생질이 외숙을 닮은 것인지 욱사의 생김새는 어느 정도 영왕을 닮은 데가 있어, 종완은 취해서 눈앞이 몽롱하여 영왕이 그를 찾아온 것으로 생각했다.
종완은 자진하여 얼빠진 모습을 했다. 웃음을 지으며 단정하게 무릎 꿇고 ‘영왕’에게 문안을 드렸다.
소년 욱사는 종완이 뭐라고 중얼대는 것을 알아듣지 못해 그에게 왜 그러느냐 조용히 물었다. 종완은 영왕이 자신을 훈계한다고 생각하여, 총애를 믿고 뻔뻔하게 땅에 꿇어앉은 채 ‘영왕’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앞으로는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부친께서는 저를 용서해주세요……이번 한번 만요.”
“…….”
백주대낮에, 소년 욱사는 어화원에서 연고 없이 다른 사람의 아버지가 되었다.
종완은 이 한 마디를 마치고는 욱사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남의 다리에 기대어 잠들었다. 욱사는 움직일 수 없어 주저하다 사람을 부축해서 일어났으나 종완은 취한 팔다리가 물러져 도저히 서 있지 못하고 온몸을 남의 몸 위에 늘어져 있다가, 마지막에는…….
종완은 눈 덮인 땅에 꿇어 앉아 몸서리치고는 빠르게 이리저리 생각했다. 그해 마지막에는 도대체 어떻게 됐지? 욱자유가 설마 자신을 안고 돌아간 건가?
그럼 지금은 어떻게 된 일이지? 이건 역시 꿈인가?
“종완.”
욱사는 종완을 가만히 바라보며 담담히 물었다.
“내 계화떡은?”
종완은 가슴이 문득 칼에 찔린 듯하여 그의 오장육부를 매우 아프게 벤 것 같아 머릿속이 순식간에 분명해졌다.
꿈을 꾸는 것이 아니다.
종완은 자신이 덫에 걸렸음을 깨달았다.
이 가마, 저 가마꾼, 모두 욱사의 사람이었다.
욱사는 잠시 기다리다 종완이 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물었다.
“일어설 수 있겠어?”
십년 전이 아니었고, 영왕이 그를 찾아오지도 않을 것이었으며, 지금의 욱사도 그를 부축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종완은 이를 악물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끓어오르는 온몸이 아파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욱 소왕야께서는 평안하셨습니까.”
욱사는 어두운지 맑은지 확언하기 어려운 안색으로, 잠시 후 말했다.
“들어와.”
종완은 데리고 온 사람이 없었지만 설령 사람을 데리고 왔더라도 욱사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따라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종완은 욱사의 뒤를 따라가다가 곁눈질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곳이 욱왕부의 별원임을 알아차렸다.
당년 그는 노예로 폄적되어 욱사가 사들였고, 곧 그를 이곳에 안치시켰다.
욱사는 그를 곧장 난각(暖阁)으로 데리고 갔다. 종완의 몸은 이미 얼어붙어 있어 갑자기 따뜻한 곳에 들어가자 온몸이 작게 떨렸다. 1
욱사가 자리에 앉자 하인이 따뜻한 차를 올렸고, 그는 잔을 들어 올려 천천히 한 모금 맛보았다.
종완은 방 안에 서서 가만히 욱사를 바라보았다.
욱사는 용모는 많이 변하지 않았지만, 전신의 기질은 마치 사람이 바뀐 것 같았다.
욱사는 종완을 거들떠보지 않고 차 반 잔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말했다.
“옷도 적지 않게 입고, 모피까지 걸친 채로 찬바람 속에 잠시 서 있었는데 이렇게 언 거야?”
욱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몸 상태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종완은 생각하고, 가다듬은 어투로 말했다.
“검안에 간 뒤 풍토가 맞지 않아 병을 앓았는데, 그 뒤로 건강이 조금 허약해져서……왕야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욱사는 찻잔을 탁자에 놓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이 아니구나.”
종완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두통을 참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비천한 몸이, 어찌 감히 왕야께 폐를 끼치겠습니까.”
욱사는 또 잠시 가만히 있다가 물었다.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냐?”
종완은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진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욱사는 종완이 마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비웃었지만 끝내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차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종완은 속으로 말했다. 뭘 물을 거면 빨리 해. 내가 잠깐 사이에 기절하고 나면 넌 거짓말도 못 물어본다고.
욱사는 홀로 차를 음미하며, 마치 종완을 잊은 것 같았다. 종완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며 마음속으로 자신이 이때 정신과 힘을 짜내어 욱사에게 응답해야 함을 분명히 알았지만 여전히 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욱사는 과연 많이 변했다.
요 몇 년간, 그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종완은 어린 시절 궁 안팎을 거닐며 우연히 비화 하나를 들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욱사는 욱왕의 친자가 아니라 숭안제의 사생자라는 것이다.
이런 소문이 나오는 것에는 당연히 근거가 있었다.
예컨대 숭안제가 욱사에 대해 보이는 그 보통을 뛰어넘는 총애는, 비교해 보자면 동년배인 사황자와 오황자도 모두 옆으로 비켜서야 했다.
또 예를 들자면 숭안제가 앞서 줄곧 키우지 못한 황자들이 있는데, 숭안제의 장남과 차남이 잇달아 요절하고 셋째 아들 역시 병든 자식으로 만약 욱사가 정말로 숭안제의 친자라면 나이로 따졌을 때 그가 넷째였다. 혹시 황제가 자신의 이 제위가 온 곳이 모호하며 자손의 복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믿고, 자기 앞의 세 아들이 죽고 병든 것을 보며 자신의 네 번째 아들도 키우지 못하게 될까봐 친 여동생 안국 장공주 댁으로 보낸 것 아닌가?
비슷한 증거들이 많이 있었지만 종완은 어렸을 때 이 소문을 들었을 당시 결코 믿지 않았다.
첫 번째로, 종완은 예전에 욱사의 생일을 구실로 얼굴을 비추었다가*, 숭안제에게 그 한 해 욱사를 낳을 수 있는 어느 비빈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연히 어느 이름 없는 궁인이 비밀리에 욱사를 낳았을 수도 있지만 욱사는 첫 돌에 왕세자로 봉해졌다. 만일 그가 정말 숭안제의 친자였다면 황제는 자신의 아들을 욱친왕의 왕세자로 삼는 것은 욱친왕을 반역으로 몰아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욱친왕은 결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아니고 그는 서자가 여러 명이나 되었다. 남의 아들이 세자가 되도록 하는 것은 아버지 대대로 어렵게 얻은 세습 불변의 왕위를 남에게 맡기게 되는 것이 되는데 그가 어떻게 승낙하겠는가?
종완은 욱친왕이 이정도로 충성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남을 대신해서 아들을 기르고 그대로 조상이 닦은 업을 함께 보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종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숭안제는 그렇게 총애하는 욱사인데 왜 그에게 공주를 주려고 하지 않는가? 혼인을 맺으면 이성친왕과의 인친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어째서 기꺼워하지 않는가?
사공주는 확실히 너무 어리지만 삼공주는 욱사와 나이가 아주 비슷했다. 하지만 숭안제는 혼인하도록 하지 않았다.
게다가 욱사가 사공주에게 구혼할 때 보기 드물게 그에게 화를 냈다.
종완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으나 자신의 상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도리어 욱사 때문에 마음을 졸였다.
황제의 아들손자가 연달아 요절하여 선서와 선유에 대해 마음을 놓지 못해 반드시 직접 만나려고 하는데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한다고?
사황자 선영과 오황자 선경이 알아내지 못한다고?
그들은 영왕의 두 아들마저도 꺼리는데 그럼 욱사는?
욱사의 출신은 도대체 어떠한가. 숭안제 자신은 알지만 선영과 선경은 모를 것이다.
종완은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이 두 황자는, 이미 욱사를 황자라 여기고 방비하는 것이 아닐까?
숭안제는 도대체 정말로 욱사를 총애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를 표적으로 삼는 것인지…….
종완은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서 거 서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정말로 버티기가 힘들어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입을 떼어 물었다.
“몇 년 동안 그런 괴롭힘에, 태자 위를 다투는 난을……피할 생각인 겁니까?”
욱사는 멍해졌다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욱사는 찻잔을 탁자 위에 놓고는 마치 대단한 농담을 들은 것 마냥 한참을 혼자 웃었다. 종완은 내심 은근히 의아해했다. 이전의 욱사는 결코 이런 모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욱사는 마침내 만족할 만큼 웃고 나서 가볍게 기침 하며 흐트러진 옷자락을 추스르고,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나는 분탕질을 못해서 걱정인데.”
종완은 이때 이명이 울리고 머리가 아파 만약 욱사의 목소리를 아주 잘 아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종완은 속으로 화가 났다.
“당신은 아예 희망을 가질 수 없는데, 구태여…….”
욱사는 잠시 멈추었다가, 종완이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지 깨닫고 다시 웃음을 터뜨리다 한참 뒤에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욱사는 웃음기를 거두어들이고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단지 모두가 잘 지내지 못하게 하고 싶을 뿐이야.”
여러 해 동안, 단지 살아남기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여야 했던 종완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하마터면 똑바로 서 있지 못할 뻔했다.
종완은 실소를 터뜨리며 자신이 이미 몇 년 동안 그 권세에 구차하게 들러붙느라 잃은 기개와 포부를 스스로 되돌아보았다. 그러지 않는다면 욱사의 이 말을 듣고 어찌하겠는가. 그의 부친을 대신하여 몇 마디 욕을 해주고 싶었다.
사는 것이 싫은가?
종완은 노여움에 의식이 혼미해졌고 눈은 붉어졌다.
욱사는 더해서 흥미롭게 종완을 바라보며 물었다.
“종완……나한테 신경 쓰는 건가?”
종완은 욱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듣지 못해 망연한 눈으로 쳐다보았고, 욱사는 비웃음 지었다.
“알겠군……넌 단지 나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나에게 몇 마디 관심을 가져주면 내가 옛정을 생각해서 너를 풀어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렇지 않아?”
종완은 눈을 뜨고 있는 것도 힘이 많이 들어서 지금은 전적으로 숨 한 자락에 의지하여 버티고 있었는데, 욱사의 면전에서 추태를 부리지 않으려면 이때 일찍이 의자를 찾아 먼저 않아야 했다. 그는 욱사가 말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으나 무슨 말을 하는지 한 글자도 들리지 않았다.
종완은 이마에 식은땀이 계속 나자 그는 손을 들어 미간을 짚고 약하게 한숨을 내뱉으며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자유, 나 견디기가 힘들어…….”
욱사는 멍해져서, 잠시 후 말했다.
“생강탕 한 그릇 끓여와.”
하인이 고개를 들어 서둘러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
종완은 이미 완전히 열에 취해 아주 외람되게 쉰 목소리로 분부했다.
“설탕 많이 넣어줘.”
“…….”
하인도 꽤나 의외로 욱사 쪽을 쳐다보았고, 욱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완은 이미 정신이 없었고,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원래 욱사가 앉아 있던 침상에 기어 있었다. 설탕을 많이 넣은 생강탕이 전달되었고, 종완은 다른 것을 살필 겨를도 없이 곧장 마셨다.
생강탕 한 그릇이 뱃속에 들어오자, 종완은 얼굴에 혈색이 조금 돌았다.
욱사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종완을 보고 있었다.
하인이 종완에게 또 한 그릇을 가져다 주었고, 종완은 작게 한 모금씩 마셨다. 욱왕부의 하인은 일을 잘했다. 생강탕에는 풍한을 가라앉히는 약이 들어있었는데 모두 좋은 약재였다. 한 주향이 지나니 그는 곧 훨씬 편안해졌다.
몸이 편해지니 머리가 맑아지고 속은 더 초조해졌다.
욱사가 자신을 데리고 와서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욱사가 말을 하지 않으니 종완은 자연히 더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두 사람은 서로 말 없이 한 사람은 차를 마시고, 한 사람은 약을 마셨다.
한참이 지나고, 욱사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종완…….”
종완은 마지막 남은 생강탕을 넘기고 작은 그릇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암암리에 욱사의 이것은 그에게 솔직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또 다시 숨 막힐 듯한 고요함이 감돌았다.
욱사는 가볍게 탁자 위를 두드리며 느긋이 말했다.
“요 몇 년 동안, 나는 몇 번이고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했어.”
종완이 눈을 들어올렸다. 무슨 의미지?
당년의 일을 함께 청산하려고 하는 것인가?
욱사는 자신의 지난 일에 빠져든 듯 느릿하게 말했다.
“시시각각 곤혹스럽고 줄곧 이해가 되지 않아서, 나는 혹여……큰 병을 앓고 머리가 망가졌나 했어.”
종완은 망연해졌다.
“하?”
“또 아니면 부주의로 낙마하여 머리를 다쳤나?”
종완은 아연실색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욱사는 담담히 말했다.
“매번, 나 스스로 그 네가 만들어낸 일들을 믿어야 할 때…….”
종완은 격하게 사레가 들렸다.
욱사는 종완을 한번 보고 계속해서 말했다.
“매번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없고 내가 흔들릴 때, 나는 어릴 적부터 나를 따라다니던 노인에게 내가 혹시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닌지 물었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런 풍류운사를 내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수가 있지?” 2
종완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기침을 했다.
종완은 죽어라 입을 다물었다. 이 순간에 절대 절대 절대 웃으면 안 된다.
욱사가 임사를 죽일 수도 있었던 이상 자신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소년 욱사가 무너져서 자신을 의심하며 노복들을 붙잡고 자신이 기억을 잃은 것인지 추궁하는 것을 생각하니 종완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종완은 기침을 핑계로 머리를 깊숙이 파묻었다.
욱자유는 차분하게 종완을 바라보았다.
“웃어, 참지 말고.”
종완은 힘껏 고개를 저었다.
욱자유는 입술을 구부려 웃으며 말했다.
“눈치가 좋네. 웃었으면……한 번 웃을 때마다 너를 한 번 울릴 참이었는데.”
종완은 연유없이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는 본래 참을 수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는 버티지 못하고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욱자유가 빙긋 웃었다.
“좋아, 한 번.”
종완은 자신을 매섭게 꼬집었고, 그는 이제 벌써 꽤나 편안해져 감히 다시 앉아있지 못하고 일어섰다.
욱사는 복잡한 안색으로 잠시 종완을 보고는 불쑥 말했다.
“가.”
종완은 아연해졌다. 지금……나보고 가라고?
욱사는 몸을 일으켰다.
“피곤해. 너는 가.”
종완은 마치 큰 사면을 받은 듯했으나 막 몸을 돌리자 다시 욱사가 냉랭히 말했다.
“네 그 못 짖는 개 좀 잘 관리해서 다시 나를 귀찮게 하지 않도록 해.”
종완은 잠시 멈추었다가, 그가 말하는 것이 임사임을 깨닫고 응 하고 대답한 후 물러갔다.
만수절 이후, 그는 원래 임사를 검안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으니, 자연히 더 이상 욱사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
검안왕부로 돌아가는 길에 종완은 속으로 몇 차례 몸부림쳤다.
종완은 원래 계획은 아주 잘 되었다. 숭안제가 완전히 마음을 놓게 한 후, 자신의 사람을 데리고 검안으로 돌아가 다시는 경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갑자기 조금 망설여졌다.
종완은 욱사의 상황을 생각하며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
어차피 선서는 곧 자신을 필요치 않을 것이었다. 자신이 혹여 욱사를 도와 방법을 강구하여 일찌감치 빠져나오라고 권할 수 있을 수…….
종완은 순식간에 그 생각을 단념했다.
먼저 자신의 보전을 위해 원할 때 발을 뺄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고, 자신이 이렇게 여러 번 욱사를 곤경에 빠뜨렸는데 그가 어떻게 자신이 그를 도울 것이라고 믿고 맡기겠는가.
종완은 몸 위의 여우 모피를 단단히 고쳐 매고 자조하며 웃었다. 하물며 자신이 이런 처지에 있는데 무슨 낯짝으로 그를 다시 찾아간단 말인가.
욱사는 아마 임사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오늘의 일을 벌인 것일 테다. 이후에는……종완은 욱사가 다시 자신을 볼 것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구역질이 나서 그럴 겨를도 없을 테다.
3개월 후,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나면 아마도 이 생에 다시 만날 리는 없을 것이다.
같은 시각 욱왕부에서는, 별원의 노집사가 욱사가 잠자리에 드는 것을 살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세자께서 오늘 종 도련님을 뵈었다지요?”
욱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종이 문에 쳐진 발을 사이에 두고 두 눈으로 보니, 종 도련님은 키도 많이 자라셨고 사람이 더욱 준수해졌더군요.”
욱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세자와 종 도련님의 소문이 자자합니다. 비록 명문 세가에서는 웃음거리로 여기고 결코 믿지 않으며 우리 왕부와 인척관계를 맺고 싶어 안달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니 오늘은 이리 밤중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났다 하더라도, 계속 만나시고자 하시면…….”
노집사는 말을 하려다 멈추었고, 욱사는 웃었다. 노집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명백했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 거지?”
노집사는 감히 욱사의 일에 관여하지 못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있어.”
욱사는 깊이 생각하며 웃음 지었다.
“오늘, 감히 한 번 웃으면 내가 그에게 한 번 울게 할 거라고 했으니, 며칠 뒤에……나는 그에게 갚도록 할 거야.”
* 원문 钟宛以前照着郁赦生辰往前推 / 다른 건 그래도 대충 뉘앙스에 맞게 집어넣었는데 이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해석을 할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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