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는 종완과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고, 그의 심사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조금쯤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종완을 보며 수화를 했다.
[주인께서는 욱 소왕야 때문에 걱정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굳이 욱사의 출신을 영왕의 신상에 갖다 대면서 자신을 설득해서 남으려는 것인가?
종완은 말을 하지 않았다.
영왕이 당년 모함당한 것에 욱왕이 힘을 썼을 것이니 종완이 욱사에게 마음을 써서는 안 되었다.
임사는 생각하고는 손짓했다.
[일이 났을 때, 욱 소왕야는 겨우 열 몇 살이었고 그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을 것이니 주인께서는 왕야께 죄송하다고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종완은 미간을 문지르며 낮게 말했다.
“나도 분명히 알고 있어.”
임사도 당시 욱왕부에 사들여졌었지만, 줄곧 중문 밖에서 말에게 먹이나 주고 있었고 안쪽의 종완과 욱사의 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고는 직접 물었다.
[주인은 당년 욱 소왕야와 감정이 있으셨습니까?]
종완은 사레가 들렸다.
“아니…….”
종완은 웃으며 말했다.
“너도 그런 헛소문을 믿지는 말아줄래? 없는 일이니까.”
임사는 어리둥절하여 종완을 쳐다보았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럼 왜 지금 욱사 때문에 걱정한단 말인가?
“그는…….”
종완은 자신의 팔을 베고 침상 머리맡에 기대어 유유히 말했다.
“이전에……그와 몇 년 동안 동문수학한 셈이긴 하지만, 꼬박 3년을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나는 왕야께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그런 사람들과 왕래하지 않았고, 별일 없이 사황자 선영과 피차 다투는 일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 관련된 적이 없었어.”
“오황자 선경은 수단이 악랄하고 속내가 독살스러워서 언제나 내게 어두운 술수를 부려 내 발목을 잡으려 해서 나는 그를 찾아가 보지 못했어……욱사는 선경의 사촌 형이고 두 사람은 같은 일파이니, 나도 자연히 공경하되 꺼렸지.”
오황자 선경의 모비 욱 귀비는 욱왕의 친누이 동생이었다.
종완은 시큰거리는 목덜미를 주무르며 말했다.
“말하자면 나도 당초에 당혹스러웠어. 그는 나와 친척 관계도 아니고 선경과 삼분 우정을 나눈 것 같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 힘을 들여서 날 사들인 걸까?”
임사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답했다.
[그것은 당신을 흠모하거나 저속한 일을 생각한 것입니다.]
“아니야, 정말로 아니야.”
종완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나를 그들의 집 별원에 내버려두고는 찾지도 묻지도 신경 쓰지도 않아서 한번 내버려 두면 삼 개월을 한참은 거리를 뒀어. 아마 별원의 집사가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그 상태로 있었을 거야.”
임사는 어리둥절했다.
[집사가 귀찮게 했다고요?]
종완은 웃으려다 또 기침을 했다.
“나는 별원에서 반 개월을 누워있었는데, 침상에서 내려올 수 있게 된 후에는 당연히 뛰어야 하지 않겠어……부엌의 남는 들통에 숨어서 나가려고도 해보고 하인으로 가장하여 측문으로 빠져나가려고도 해보고 밤마다 나갈만한 곳을 찾아 담을 뒤지고 다녔지……그 별원에는 주인집 사람이 살지 않았는데 별원의 하인 하나는 나만 쳐다보고 있었어. 그 집사는 내가 도망칠까 봐 밤낮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밤마다 의자를 내 침상 머리맡에 갖다 놓고 앉아 나를 주시했지.”
종완은 기침을 두어 번 하고은 웃음을 참았다.
“나는 그 노집사에게 물었어…….”
소년 종완은 침상에 누워 조용한 것이 사람이 무해해 보였다.
노집사만이 이 이가 어떤 물건인지 알았다. 3개월이 되자 종완은 잠시도 밖으로 뛰쳐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때가 없었고, 집사는 노파심에 거듭 타일렀다.
‘도련님은 이미 노적에 떨어졌으니, 밖으로 나간다고 하더라도 글을 쓸데도 없고, 성에서 나가지 못하고 평생 집도 땅도 사지 못한 채로 어디에서나 숨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종완은 속으로 쓸데없는 소리나 했다. 본조의 율법은 내가 아는 것이 당신이 아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되는데.
집사는 성가시게 하는 데에 참을성이 없어, 계속 그를 겁주었다.
‘도련님, 우리 세자께서는 당신의 매입 증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도망가도 세자께서 관아에 한소리 하기만 하시면 하루도 되지 않아 붙잡혀 돌아오실 겁니다. 그때가 되면 도망친 반노(叛奴)는 관부에서 경면(黥面) 1을 하는데, 경면 아시죠?’ 2
종완은 전혀 개의치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
“나는 한 명의 남자로 얼굴이 망가지면 망가지는 것이니 걱정은 아껴두시지요!”
노집사는 안달했다.
“경면은 한평생 남는 일인데, 어떻게 자신의 얼굴을 개의치 않는다 하십니까…….”
소년 종완은 대단히 오묘해했다.
“난 원래 얼굴은 필요 없었습니다, 집사!!! 나는 벌써 되는대로 이 지경에 이르렀지 않습니까?! 아직도 얼굴이 필요합니까?”
*얼굴이 필요하다는 말의 要脸은 체면을 차리다, 얼굴은 필요 없다(不要脸)는 말은 보통 뻔뻔하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 문장에서는 앞에 얼굴 이야기와 더불어서 중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일단 직역했습니다.
노집사는 화가 나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백주대낮에 한바탕 말다툼을 벌이다 밤이 되자 노집사는 종완이 아마 잠시 쉴 것으로 생각하고 간신히 의자에 걸터앉아 잠시 눈을 붙였는데, 종완이 느닷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풍 어르신.”
종완은 졸음기 반절도 없이 침상의 휘장 장식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터놓고 이야기 해봅시다.”
“…….”
풍 집사는 속으로 이 근심을 놓을 수가 없는 놈에게 욕을 퍼부으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딱딱하게 말했다.
“무슨 얘기요?!”
소년 종완은 평온하게 말했다.
풍 집사는 순간 멍해졌다가 자신의 노모를 농지거리한 것에 반응하여 곧바로 폭발해 종완에게 손을 댔다.
“진정하세요 진정, 뭐가 그리 성미가 급해요?”
소년 종완은 부랴부랴 용서를 구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침착하세요! 그 나이에 정말로 역정을 내면 안된다고요, 앉아요! 앉아서…….”
풍 집사는 화가 나서 수염을 치켜든 채로, 더는 그를 상대하기 싫어 등을 돌리고 앉았다. 반 주향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막 선잠이 들 때쯤, 종완은 또 불쑥 말했다.
“풍 어르신, 부인 있으십니까?”
풍 집사는 만면에 흉악한 기색을 띠고 말했다.
“집사람은 아직 잘 있습니다.”
종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과 사이가 좋습니까?”
풍 집사는 망연해졌다. 한밤중에……그는 왜 클만큼 큰 어린애와 자신의 부인에 대한 일을 떠들어야 하는가?
풍 집사는 고개를 돌려 종완을 한번 보았다.
“좋든 나쁘든! 이 일이 도련님과 관계가 있습니까?”
종완은 태연했다.
“당연하지요.”
풍 집사는 화를 가라앉혔다.
“그럼 종 도련님께 묻지요……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한밤중, 삼경에, 당신과 저.”
종완은 자신을 가리키고 또 풍 집사를 가리켰다.
“한 방에 같이 있으니 당신은 제가 도둑질하는지 감시할 텐데, 내가 잠든 사이에 나를 욕보일까 봐 염려되어서요.”
풍 집사는 완전히 이성이 날아가서는 일어서서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저는 올해 쉰 넷입니다! 손자는 당신과 큰 차이가 없고요! 저는 당신과……저는…….”
“화화화내지 마시지요…….”
종완은 그가 옳고 그름을 따지며 화내는 것을 두려워하여 황급히 설득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한 것입니다! 다만 그럴 수도 있다고……당신이 밤에 제가 자는 얼굴을 보고 있다가 잠시 통제하지 못하고 조심하지 않아 나쁜 경험을 하게 될까 걱정이라서요. 당신은 가정이 있는 사람이고 나도 당신네 집 세자를 위해 옥처럼 순결하게 정절을 지켜야 하는데, 우리 둘이 그렇게 되면 당신과 부인의 정을 깨뜨렸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밥벌이도 잃게 되니 나는 차마…….”
풍 집사는 그 말을 듣고 폭발하여 삿대질하며 저주를 퍼부었고 화가 난 얼굴은 온통 자줏빛이 되었다.
“진정하세요……제가 잘못했어요. 당신과 아침저녁으로 함께하니 당신에게 딴마음이 든 것입니다. 당신은 아니에요. 아니지요.”
종완은 급히 사죄했다.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마음을 헤아리니, 당신에게 사죄드립니다.”
종완은 침상에서 내려와 직접 풍 집사를 위해 차 한잔을 따랐다.
풍 집사는 차를 마시고 한참이 지나고서야 호흡이 누그러졌다.
종완이 자리에 누웠고, 풍 집사가 다시 앉았다.
반 시진 후, 풍 집사는 어렴풋이 잠기운에 들었고, 종완은 또 말했다.
“생각해 봤는데, 제가 방금 한 말이 너무 지나친 것 같아요. 미안해요, 풍 집사. 당신은 좋은 사람이군요.”
“…….”
소년 종완은 창밖을 내다보며 실낱같은 소리로 말했다.
“보세요. 오늘 밤은 달빛이 좋네요.”
풍 집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종완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지금 분위기도 화기애애한 것 같아요.”
풍 집사는 자신이 지쳐서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대체 어디가 화기애애하단 말인가?
종완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니 제가 노래를 불러드리는 것이 어떨까요?”
풍 집사는 무감각하게 종완을 바라보았다.
종완은 수줍어하며 말했다.
“원래 극단에 팔려가려고 했던 터라 옥중에 있을 때……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풍 집사는 황량한 눈빛으로 그를 칭찬하는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종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침상 받침을 가볍게 두드렸다.
“문을 넘어가다……흰 치마가 끼었다……집안의 살림꾼이……죽었구나…….”
“입 다무십시오!!!”
풍 집사가 펄펄 뛰었다.
“주인집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습니까?!”
“안 됩니까?”
종완은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제가 이 처지가 되고 나서는……소과부상분(小寡妇上坟)밖에 못 부르는데요.” 4
풍 집사는 화가 나서 손을 떨었다.
“당신……노래하지 마십시오.”
종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화내지 마세요. 저는 그저 노래를 불러서 당신을 재우려고 했어요.”
“당신이 말을 그만하면! 나는 잘 수 있습니다!!!”
종완은 세 손가락을 치켜들고 하늘에 맹세했다.
“입 다물게요.”
풍 집사가 씩씩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종완은 말한 것을 지켰는데, 이번에는 정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반 시진 후, 대낮에 들볶이고 또 한밤중에 시달린 풍 집사는 죽은 듯이 잠들었다.
형형한 눈빛으로 잠들지 않은 소년 종완은 입가를 살짝 휘어올리며 일어나 앉았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종완은 신발을 신을 엄두도 내지 않고 맨발로 가볍게 걸어나가 그날 밤 별원을 벗어났다.
물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잡혀 돌아왔다.
종완은 별원 안채에 눌러앉아 여전히 까불어댔다.
“경면하는 것밖에 안 되는데, 마음대로 해! 이 몸의 면상이 찔려서 퍼렇게 되어도 똑같이 수많은 아가씨가 나한테 시집오고 싶어 할테니!”
풍 집사는 밤새 그를 쫓아다녔는데, 이때는 이미 지쳐 죽을 지경이어서 실낱같은 숨소리로 말했다.
“무섭지 않으신 것이지요? 좋아요, 좋습니다……기다려요, 좀 더 기다리십시오.”
종완이 기다리기를 반 시진 후, 욱사가 왔다.
종완은 땅바닥에 꿇어앉아 욱사를 본 첫눈에 자신은 끝장났음을 알았다.
정말로 자신을 욕보일 수 있는 사람이 왔다.
* 항상 그렇듯 의역이 많고, 저 노래는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은지 검색해도 한국어 풀이를 해놓은 게 없어서 대강 번역했습니다.
* 욱사가 또라이라고 생각했는데 종완,, 만만치 않다,,
*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한달만이라니..그리고 나도 번체판 사고싶었는데ㅠ 항상 현생이 문제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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