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절 뒤에, 나와 함께 검안으로 돌아가자.”
곧 도성에 들어가게 되니 종완은 임사에게 분부했다.
“끝내지 못한 일이 있으면 미리 처리해둬.”
임사는 멍해졌다가 손짓했다.
[저는 갈 수 없습니다. 경중에 남아 당신을 돕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종완은 고개를 저었다.
“선서와 선유를 본 후 황상은 완전히 마음을 놓을 것이고 네가 남아있어도 별로 필요하지 않을 테니 우리랑 돌아가는 게 나아. 이후에는 하늘 높고 바다 넓을 것이니 나를 따라 편안히 살아.”
임사의 반박을 기다리지 않고 종완은 다시 말했다.
“너도 말했지만, 욱사는 옛정을 생각하지 않아. 그가 지난번에는 너를 눈감아 주었다지만 다음은? 사황자와 오황자가 혹여 맞서게 될 수도 있어. 오황자는 욱왕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니 사황자라고 해서 반드시 버텨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네가 그의 저택에서 안전하지 못하다면 나는 너를 이곳에 남겨둘 수 없어.”
임사는 잠시 생각하다 더 고집하지 못하고 주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종완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가자.”
임사는 종완에게 절을 올리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은밀히 물러갔다. 종완은 마차의 가림막을 들어 올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성문을 바라보며 의관을 가다듬었다.
종완은 검문에 걸리까봐 마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밖에서는 엄평산과 예부(礼部)의 소관(小官), 그리고 성을 지키는 관리가 문서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들은 보름 전에 검안왕부가 경중에 든다는 기별을 받아 별로 난감해하지 않고 멀직이서 선서의 어가에 예를 보인 뒤 수행하는 하인의 수를 간단히 묻고 곧 사람들을 성으로 들여보냈다.
이전의 영왕부는 일찍이 금상에게 회수되어 수리된 후 지금은 이미 오황자 선경의 저택이었는데, 영왕부를 지날 무렵 종완은 마차의 가림막을 젖혔다.
금상이 막 황위를 물려받았을 시기에는 적어도 자신의 이 어린 동생에게는 무척 너그러운 면이 있어, 왕으로 봉하고 저택을 내렸으며 친히 높은 가문의 귀녀를 골라 혼인하도록 하여 꽤나 아버지 같은 큰형의 모습이었다.
당시 영왕의 외가인 종씨 가문은 이미 일을 많이 저지른 상태였다. 종가(钟家)에는 여아가 많고 남아가 적었고 두 명의 황비가 나왔지만 본가의 젊은 남자는 많지 않아 손에 꼽을 만큼의 이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연루되었다. 바로 옆 작은 집에는 남자아이 하나가 더 있었는데, 나이가 너무 어린 까닭에 가까스로 연좌를 피한 이후 여러 곳을 전전하다 영왕이 왕부에 들이고 의붓아들 삼아 어사대(御史台)의 입을 막았다.
영왕의 이러한 비호가 있어 종완은 비로소 아무런 근심없이 자라났다.
영왕에게 이와 같이 큰 은혜를 입었는데 그 뒤에 사변이 났을 때 하마터면 선서를 지키지 못할 뻔하였으니, 종완은 어렸을 적 자랐던 곳을 볼 낯이 없어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가림막을 내려놓았다.
일행은 다른 곳의 관저로 가게 되었는데, 장소는 크지 않지만 섬세한 편이었다.
엄평산은 이런 아랫 관리들을 대하는데 익숙하지 않아 종완은 직접 염낭 몇 개를 소매에 챙겨 차에서 뛰어내리고는 다가가서 친근하게 안부를 물었다. 예부의 소관들은 떠들썩하게 만면에 웃음은 내비쳤다.
“왕야께 여기서 잘 쉬시라 안부 전해드리고, 조금 비질 1을 하는 게 좋습니다.”
소관 하나가 웃으며 슬쩍 일러주었다.
“신시(申时) 전후로, 궁에서 아마 초청하러 사람이 올 겁니다.”
종완은 염낭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예부의 사람을 정성 들여 배웅한 후 종완은 쉴 겨를도 없이 시큰시큰한 목덜미를 주무르며 안뜰로 들어가 사람들을 불러서 먼저 아가씨의 방을 치우도록 하고, 종완은 뜰에 서서 문에 드리워진 발을 사이에 두고 물었다.
“아가씨의 규방이 안배가 잘 되어있습니까?”
선종심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그를 크게 보아서 결코 의심을 피하지 않고 직접 여우 모피로 만든 피풍의를 들고 나왔다.
“오는 길에 만들었는데 드디어 다 되었어요. 맞는지 한번 보세요.”
종완은 서둘러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당초에 요 며칠 나한테 주려고 만든 겁니까? 저는 아가씨의 큰 오라비에게 주려는 줄 알았는데…….”
“추위를 더 많이 타시잖아요.”
천진하고 짓궂은 친동생에 비해 선종심은 일찍부터 매우 많은 것을 알아야 했다. 그녀는 성격이 청랭(清冷)하여 사람에게 관심의 기울일 때의 말투도 담담했다.
“경중은 과연 추우니 일찍 방에 가서 가만히 있으세요. 돌아와서 또 병 나지 않게.”
“알겠어요, 알겠어.”
종완은 웃으며 피풍의를 두르고 응답했다.
“바로 갈 겁니다.”
선종심은 좌우를 살펴보고 묵묵히 치수를 기억해두고는 말했다.
“고칠 시간이 없으니 먼저 입고, 저녁에 사람을 시켜 가져오기를 기다렸다가 옷깃을 좀 더 여며줄게요.”
종완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선종심은 더 말을 얹지 않고 할 말이 끝나자 곧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종완이 어디 공연히 쉬겠는가, 다시 몸을 돌려 선서의 거처로 갔다.
선서는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
절반은 경중으로 돌아와 떠올린 해묵은 지난 일 때문이었고, 절반은 종완이 겁준 것 때문이었다.
종완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 어리지 않은 선서가 이렇게까지 두려움을 금치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해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문에 기대어 웃으며 말했다.
“왕야께서 이렇게 가서 성상을 뵈면, 성상께서 우리 검안의 궁곤함이 왕야까지 배불리 먹지 못할 정도라고 생각하시겠습니다.”
선서는 종완이 그를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웃지 못했다. 그는 바싹 마른 입술을 오므렸고 눈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성에 들어설 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엔 온통 7년 전에 혼자 왕부에 갇혀있던 광경이 떠올라. 부왕이 가시고, 너도 사람들에게 끌려가고, 난…….”
종완이 한숨을 내쉬었다.
종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나빴어. 나도 당시에 일심으로 너를 구하러 가려고 했지만 욱왕부 쪽은 소식이 안팎으로 통하지 않았고, 나는……됐어. 다 지나간 일이야.”
선서는 우려하며 말했다.
“혹시 나한테 물으시면, 물으시면…….”
“너를 난처하게 하는 말을 묻지는 않으실 거야. 해묵은 지난 일은, 그가 너보다 더 언급하고 싶지 않을 테니.”
종완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는 안심하려고 하는 것이니 네가 안심시키면 돼. 정말로 너를 잡아내려 했으면 검안으로 독주 한 주전자를 보내는 일이면 되는데 특별히 너를 여기로 불러들일 필요가 있겠어? 역사책(史书)에 실리기 충분하지 않은 게 싫은 거야?”
선서가 말을 듣고 얼굴빛이 조금 나아지자 종완은 조용히 말했다.
“다 지나간 일이야. 돌아오면……내가 너희를 데려다줄게.”
“정말?”
선서의 눈이 밝아졌다.
“나랑 같이 입궁하는 거야?”
“물론 거짓말이지.”
종완이 웃었다.
“내 생각에는, 들어갈 수 있을까? 궁 밖에서 지키고 있을게.”
선서는 어쩔 수 없이 웃었지만, 어쨌든 조금은 안심한 셈이었다.
신시, 과연 궁에서 사람이 와서 선서와 선유 두 사람에게만 기별을 전했다.
종완은 종복으로 가장하고 뒤따랐으나 궁문에 도착하자마자 가로막혔다. 선서와 선유는 마차에서 내려 궁의 사람들을 따라갔다.
두 사람은 태감들을 따라가며 줄곧 조심했다. 구불구불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알 수 없을 무렵 마침내 황제를 마주했고, 머리를 조아렸다.
선서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고, 무엇을 물어서 답을 하든 말하는 소리가 모기보다 얼마나 큰지, 노태감이 소리 높여 말을 전하며 돕는 것에 의지했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어린 선유가 대답하는 것이 좀 더 나았다. 영왕의 사변 당시 그는 겨우 두세 살로, 일을 기억하지 못했고 이 몇 년을 아무런 근심없이 자라서 그의 큰형보다 담력이 훨씬 센 덕에 황제가 물을 때에 황제를 한번 올려다 보고는 속으로 혼자 의아해했다.
이 ‘황제백부’는 나이가 좀 아주 많아서 보기에 육십은 된 것 같았는데, 선유의 할아버지가 되기에도 충분히 나이가 많았다.
숭안제(崇安帝)는 요 몇 년 동안 늙은 기색이 점차 드러났고, 말하는 중에 기력이 조금 부족하여 그는 어린 선유를 자세히 살피고 자애로운 웃음을 지으며 그의 학업에 대해 물었다.
선유가 아직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선서는 먼저 혼자 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당년 숭안제도 선서에게 이렇게 물었고, 이틀 뒤 그와 종완은 궁으로 보내졌다.
숭안제는……설마 이것을 빌미로 선유를 경중에 남기려는 것인가?
선서가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숭안제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선유에게 몇 마디를 시험하고 가르쳤고 선유는 하나하나 대답했다.
숭안제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도가 있구나. 네 형이 청한 선생은 어떻느냐? 학식은 어떠하냐, 엄격하느냐?”
선유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아직 스승을 들이지는 않았고, 그저…….”
선유는 어렸지만 본능적으로 종완의 이름을 말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잠깐 멈추고는 말했다.
“집안의 글을 아는 집사로부터 배웠습니다.”
숭안제는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귀원이 너를 가르쳤느냐?”
종완, 자는 귀원(归远)이다.
선유는 당혹하여 눈썹을 찡그렸다. 어떻게 안 거지?
숭안제는 느릿하게 말했다.
“그가 너를 가르쳐 주었으니, 당연히 틀릴 리 없지.”
숭안제는 말하는 것이 아주 느긋하여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한참이 지나고서야 말했다.
어린 선유는 가만히 듣다가 감히 대답하지 못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숭안제는 말을 잇지 않았고 손을 흔들고는 두 사람의 학업에 대해 더 묻지도 않아 선서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 잠시 일상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늘빛이 차차 어두워졌다. 숭안제는 기력이 조금 떨어지는 듯했고, 두 사람에게 수라상을 내리고 노태감에게 둘을 데리고 가도록 했다.
선서와 선유는 소난각으로 이끌려 왔고, 다른 사람들이 없어지자 선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황상께서는 한 번 듣고 종완을 말하시는지…….”
황상을 곁에서 모시는 노태감이 음식을 나르는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자 선유는 즉시 입을 다물었고, 노태감은 입가를 살짝 구부리고 못 들은 체하며 직접 두 사람에게 요리를 권했다.
“늙은 종은 이제야 들었습니다.”
노태감은 웃으며 말했다.
“소전하의 학업은, 종 도련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것입니까?”
선유는 의아해했다.
“공공(公公)도 종완을 아세요?”
노태감의 뒤에 있던 작은 내시 하나가 입을 가리고 소리 없이 웃었다.
염정이 천하에 퍼져있는 종완을 누가 모를까?
선유도 당연히 그 얘기를 들어보았고, 그들이 종완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선서가 선유를 한 번 흘겼다.
‘숭안제 신변의 태감 역시 우리가 미움을 사도 되는 대상이 아니다.’
선유는 고개를 숙이고 뻣뻣하게 밥을 긁었다.
노태감은 고개를 돌려 그 어린 내시를 힐끗 쳐다보고, 요리를 권하면서 서두르지도 느긋하지도 않게 말했다.
“당연히 알고 있지요. 본조(本朝)의 최연소 거인(举人) 나리를 누가 모르겠습니까?” 4
선유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종완이 본래 이렇게 대단한지 전혀 알지 못했던 까닭에 잠시 멍해졌다.
“아?”
노태감은 웃음 지으며 유유히 말했다.
“종가는 비록 몰락했지만, 영 왕야는 그를 아들로 삼아 키우셨지요. 이런 세가의 사람, 이런 출신, 이런 재능으로 장래에 3성 6부 그 어느 관청에 갈 수 없겠습니까? 공교롭게도 종 도련님은 자부심이 강하셔서 과거의 정도를 가고자 하셨고, 또 단번에 청운에 오르셨지요……향시의 해원(解元), 회시의 회원(会元) 5*, 만일…….”
노태감은 할 수 없는 말을 삼켰다.
“늙은 종은 전조(前朝)의 가장 나이 젊은 장원이 18세라고 들었는데, 종 도련님이 그 해에 만일 전시에 드셨다면…….” 6
“아마도 몇 조(朝) 간 가장 젊은 장원랑이 되었을 겁니다.”
노태감은 허리춤의 먼지를 털고, 몸을 돌려 그 사리 분별 못하는 소태감을 쳤다.
궁 밖, 삼원(三元)에 잇달아 급제할 정도의 종 재자(才子)는 찬바람 속에 서서 재채기를 했다. 8
“정말 춥다…….”
종완은 벌써 두 시진을 기다렸고 손난로의 석탄은 다 타버렸다. 그는 다리가 곱을까 봐 아예 차에서 내려 왔다갔다하며 손발을 움직였다.
이미 술시(戌时)라 날은 일찍이 어두워졌다. 종완은 멀리 궁문을 힐끔거리고 있었는데, 속으로는 기실 그리 조급해하지 않았다. 9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황상이 선유를 볼모로 삼아 남겨두는 것에 불과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가능성은 아주 작았다.
군권을 쥐고 있는 번왕세자를 경중에 남겨 가르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만 선유를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방비하는가? 선서가 검안에 수십 명을 집결시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방비하는가?
검안은 땅이 광활하나 사람이 적고 매우 척박하여 주기적인 조정의 구제를 필요로 한다. 종완이 만약 황제이고 검안에서 반란을 일으킨다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그 반란에 동의할 것이다. 이 가난한 놈들이 굴러가서 따로 파벌을 세우면 해마다 주는 구제도 절약된다.
종완은 뻣뻣해진 손을 비볐다. 그의 양손은 얼어서 감각이 없었고, 지금은 가슴 한구석의 열기에 의지하여 버티고 있었다.
멀리서 갑자기 수레와 말소리가 들려와 종완은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았다.
차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마차에 걸린 등불이 흔들리고 있었으며 등 위에는 ‘욱郁’ 자가 떡하니 찍혀있었다.
종완은 가슴이 쿵쿵거렸다.
욱왕부의 차와 말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종완은 심중에 온갖 생각과 걱정이 감돌았다.
안국 공주는 자신의 어가가 있으니 그녀일 리 없었다.
욱왕부의 자질구레한 방계들은 절대 이 시간에 궁에서 나올 수 없다.
차 안에 타고 있는 이는, 욱 왕야 아니면 누군가 밖에 없다.
종완은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읍조렸다. 욱 왕야여라, 욱 왕야여랴, 욱 왕야여라…….
종완 곁의 마차에는 검안왕부의 등롱이 달려있어 상대방이 못 볼리 없었고, 만약 차 안에 있는 사람이 욱 왕야라면 개의치 않으며 자연히 가버릴 테지만, 만약 욱사라면…….
욱사가 많은 총애를 받는다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작위를 물려받지 못한 신분이니 검안왕의 차를 보면 마차를 멈추어 양보하려고 할 것이다.
욱왕부의 마차는 갈수록 가까워져, 찬바람 속에서도 종완은 등 뒤로 더운 땀을 흘렸다.
잠시 후, 마차가 멈추었다.
욱사의 차와 말이 서서히 길가에 멈추고, 집사 한 명이 차에서 내리더니 멀리서 먼저 예를 올리고 뒤이어 몸을 일으켜 작게 뛰어왔다.
종완은 속으로 조금 기뻐했다. 몹시 추운 날에 욱사는 차에서 내리려 하지 않을 테니, 집사를 보내 물어서 차 안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 자연히 갈 것이었다.
집사는 다가와 고개를 들고, 얼이 빠졌다.
집사는 단번에 종완을 알아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종……종 도련님?!”
종완은 무너졌다. 소리 좀 작게 해 주겠어?!!
종완은 얼어붙은 손을 꽉 쥐고 심호흡을 하고는 담담히 미소 지었다.
“네, 접니다. 왕야께서는 궁에 들어가셔서 아직 나오지 않으셨으니 욱 소왕야 먼저 가시지요.”
“맞군요.”
집사는 종완을 아래위로 살피고는 말투가 격앙되었다.
“제가 먼저 주인님께 가서 여기에 계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아니요…….”
종완은 찬바람에 숨이 막혀 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 집사는 일찌감치 바람을 휘날리며 아주 빠르게 뛰어 돌아갔다.
종완은 옷깃을 붙잡고 기침하며 숨을 쉴 수가 없었는데, 심중으로는 그 집사를 잡아먹지 못해 한스러웠다.
그는 멀리서 그 집사가 욱사의 마차 앞으로 달려가 몸을 굽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을 보았다.
망했다 망했다 망했다…….
이번엔 정말 끝장이야…….
종완은 심장 박동이 날듯이 빨라져서 잠시 후에 어떻게 욱사를 대응해야 할지 따지고 있었다.
그 집사는 욱사의 차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 그동안 종완은 욱사가 이미 친위병들을 배치하여 자신을 쏴 죽이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이건 뭐……하는 거지?”
종완은 얼어서 말을 모두 확실히 알아듣지 못했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욱사의 어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족히 차를 반 잔 비울 시간이 지나자 그 집사가 이르는 소리에 욱왕부의 수레와 말이 움직이기 시작해, 천천히, 떠났다.
이렇게 간다고?
종완은 가만히 욱왕부의 어가가 멀리 가는 것을 지켜보다, 무방비한 상태로 돌연 찬바람이 허파에 들어차 재차 경천동지할 정도로 기침을 했다.
마차에 따라온 종복이 얼른 와서 종완을 부축하고 다급히 말했다.
“먼저 돌아가시지 않겠습니까? 이……이…….”
“괜……괜찮아.”
종완은 종복에게 기대어 한참을 있다 자조하며 웃음 지었다.
“내가 나를 겁준 거지. 생각이, 생각이 많았어.”
종완은 욱사의 수레와 말이 점차 멀어져 가는 것을 보고 웃었다.
욱사의 성격은 변했든 변하지 않았든,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자신이 여기 있는 걸 안다고 쳐도, 또 어찌하겠는가?
차에서 내려서 자신과 옛날 얘기라도 할까?
그럼 내일, 대략 경중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그가 궁문 앞에서 만났다는 것을 알 것이다.
종완은 참지 못하고 웃었다. 그럼 그는 정말 오점을 씻지 못하는 것이다.
종완은 찬바람을 몇 모금 마셔서 가슴은 차디차고 몸은 다시 열이 오르는 듯했다. 긴요한 때에 종완은 감히 자신의 몸을 가지고 장난을 치치 않았다. 자신이 만약 이 중요한 시기에 쓰러지게 된다면 그 아이들은 정말 혼이 나가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종완은 감히 버티지 못하고 종복의 말에 따라 자신에게 가마를 불러달라고 했다.
종완은 따라오려는 사람을 물리고 스스로 작은 가마에 올랐다.
종완은 가마에 기대어 조용히 숨을 토해냈다.
7년이었다. 당년의 재능 넘치던 풍류소년랑은, 이미 이야기책 속의 단수가 되었다.
별로 볼 것도 없었다.
종완은 몸이 갑자기 추웠다 더웠다 하며 잠든 듯 또 잠들지 않은 듯 흐리멍덩하여 꿈을 꾸었다.
꿈속의 그 사람은 열 몇 살로, 말하기를 즐기지 않고, 창 아래에 앉아 조용히 글씨를 쓰고, 창밖에는 도화가 만발하여 그의 어깨 위에 꽃잎이 점점이 내려앉았다.
가마꾼이 그를 태우고 흔들거린 지 얼마나 되었는지, 마침내 가마를 내려놓았다.
종완은 놀라서 깨어났다.
종완은 눈을 비비고 넋을 놓았다. 그렇게 과묵하고 반듯한 사람이 어떻게 임사가 말한 그 일들을 할 수 있지?
종완이 얼어붙은 온몸이 경직되어 힘겹게 일어서려 할 때, 가마에 드리워진 발이 젖혀졌다.
가마 밖, 큰 신형에 먹색 여우 가죽으로 된 옷을 걸친 욱자유가 무표정하게 가마의 발을 들어올리고 한 자 한 자 읊었다.
“종. 귀. 원.”
* 원문; 春闱的解元,秋闱的会元 ;회시의 해원, 향시의 회원
; 본문에서 고쳐 적어 놨는데, 원래 해원은 향시의 수석 합격자, 회원은 회시의 수석 합격자입니다. 원문에서는 거꾸로 적혀 있는데, 아마 春, 秋 때문에 향시와 회시의 순서를 잘못 쓰신 듯 합니다. 가지고 있지 않아서 모르겠지만(ㅠ) 단행본에서는 수정하셨을 듯 해요.
중국의 과거 제도에 대해 말해보자면, 매년 있는 원시院试에 합격해서 수재秀才가 되면 3년에 한 번 있는 향시乡试에 참가합니다(가을에 실시해서 秋闱라고 함). 향시에 합격한 거인举人은 이듬해 봄에 열리는 회시会试(=春闱)에 응시할 수 있습니다. 회시 합격자는 공사贡士라고 부르고, 공사가 된 후에는 황제가 주관하는 전시殿试에 응시할 수 있습니다. 전시에 붙으면 진사进士가 되고, 전시 수석을 장원状元이라고 합니다. 향시, 회시, 전시에서 모두 수석을 하면 삼원三元이라고 합니다. 전시는 사실상 탈락자가 없다고 하니 종완이 회시 수석이었으면 전시도 당연히 붙고 장원 할 거라고 예상하는 건 당연하겠죠.
종완이 영왕 일에 휘말려서 신분 잃고 욱사 집에 반년 살고 검안으로 내려가서 자리잡고 나니까 막 17살 생일이었던 걸 보면 신분 잃기 직전에는 15살 아니면 16살인데 이 나이에 과거 시험 올패스하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천재입니다... 황제가 아까워 할 만하네요. 그런데 그 재능으로 본인 알페스,,연성을,,,, 사람일은 모르는 거군요...
* 이 소설은 특별히 어려운 건 없어서 술술 읽히는 편인데 작가님이 오타가 좀 있으신 편...진강판이라 그런거겠죠?ㅠㅠ 번체판 가지고 싶어요..
* 사석에서는 종완이 선서랑 말 트고 지낼 것 같다는 뇌피셜이 있습니다. 어차피 중국어로는 크게 의미없는 이야기지만..
* 그리고 보통 주인공이 만나는 장면은 설레고 두근거리는데 이건 좀 다른 의미로 두근거리는... 마주칠까봐 겁내다가 안만나길래 안심했는데 마지막에 종완이랑 같이 통수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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