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완이 적반하장으로 나오기 전에 풍 집사는 먼저 벌떡 일어나 종완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부르르 떨며 더듬거렸다.
“그, 그가……제 어머니를 한담 거리 삼고……노래를 부르면서……제게 무덤에 가라고, 삼 개월입니다!!! 저……저 벽이 그렇게 높습니까! 그렇게 높습니까!!”
“…….”
이게 무슨 소리인가?
풍 집사는 마침내 소주인을 모셔와 일심으로 고해바치려 하였으나, 밤낮으로 종일 뛰어다닌 데다 지치고 화가 나 이미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공교롭게도 그는 또 초조해해서 하늘에 대고 한마디 땅에 대고 한마디 하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욱사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소년 욱사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돌봐준 노련하고 신중한 풍 집사를 당황스럽게 쳐다보며 잠시 침묵했다가, 고개를 돌려 종자에게 분부했다.
“위 태의를 부르러 가거라.”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풍 집사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의자 등을 짚은 채 종완을 가리켰다.
“그가……그……그그그가!”
욱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어쨌든 진찰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풍 집사는 하는 수 없이 전력을 다해 종완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숨이 넘어갈 듯한 상태로 하인들에 의해 부축되어 물러갔다.
안채에는 종완과 욱사 두 사람만 남았고, 두 사람은 마주보고는 말이 없었다.
“네 아버지는 이렇게 멋진 ‘좋은 일’을 하셨어.”
종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나를 사 왔는데, 내가 너에게 해코지하고 왕야를 위해 복수하는 것이 두렵지 않나?”
욱사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긴 했어.”
“그런데도 날 데려오다니, 담이 정말 크구나.”
종완은 아래위로 욱사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하지만……나이가 많지 않아도 색심(色心)이 작지 않다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목숨을 걸고 자극을 즐긴다거나…….”
욱사는 잠시 후에야 종완의 생각을 깨닫고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욱사는 말했다.
“그리고 난 알아. 넌 날 죽이지 않을 거야.”
종완은 깊게 숨을 들이 마셨다. 확실히.
그는 욱사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네 짐작이 맞아.”
종완은 몸을 일으켜, 뒤틀려서 아픈 어깨를 문질렀다.
“억울하게 빚도 있고 주인도 있고……난……난 제기랄…….”
종완은 한바탕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져 똑바로 서지 못하고 다시 쓰러져 무릎을 꿇었다.
종완을 착실하게 넘어지는 바람에 아픔에 굳은 채 숨을 내쉬었다.
풍 집사는 하루를 꼬박 지새웠지만 중간중간에 적어도 졸기는 했으나, 종완은 줄곧 똑바로 깨어서 날을 지새웠고 중간에 밥도 몇 입 먹지 못한 채 지금까지 버틴 터라 서 있지도 못했다.
소년 욱사는 종완을 부축하려다 종완이 방금 한 말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하인에게 종완을 일으켜 와실에 데려다 줄 것을 분부했다.
잠시 후 위 태의가 와서 두 사람의 맥을 짚고는 종완에게 외상약을, 풍 집사에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약을 처방했다.
풍 집사는 앓아누운 까닭에 당분간 종완을 관리할 기력이 없었고, 욱사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이 그를 주시했다.
와실에서 종완은 곁에 있는 사람이 수고하지 않도록 바짓단을 올려 찰과상을 입은 다리를 드러내고 연고를 상처에 발랐다.
욱사는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서안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며 곁눈질하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욱사가 사락거리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드니…….
종완은 이미 양 무릎의 상처를 모두 치료한 상태였고, 그는 침상 아래에 서서 욱사를 등진 채 상의를 벗고는 그 안의 중의도 벗어 소년의 앙상한 근골를 드러내고 있었다.
종완의 피부는 매우 하얘 울긋불긋한 상처를 부각하여 사람을 유달리 놀라게 했다.
종완은 스스로 자신의 몸에 약을 얹으며 가볍게 그 위를 불고 있었는데 입속에서 아직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욱사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였다. 본래는 종완이 욕을 하며 헛소리를 내뱉으며 자신을 저주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종완은 조용히 숨을 내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
소년 욱사는 마음이 왠지 누그러졌다.
그는 잠시 시선을 머물렀는데 종완이 약을 다 바르고 몸을 돌리리라 생각지 못해 네 눈이 마주쳤고, 욱사는 쏜살같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
종완은 속으로 조금 당황했으나 허세를 부렸다.
“너, 뭘 하고 싶은 건데?!”
욱사는 마음이 별로 안정되지 못하여 그는 재차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종완은 욱사를 경계심을 갖고 바라보며 옷을 걸치고 누웠다.
종완은 매우 졸렸지만, 잠들지 못했다.
욱사는 조금 전 그의 눈짓을 보고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종완은 자신이 잠들까 봐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했다.
한 시진 후, 욱사는 책 한 권을 다 읽고 평어와 주해까지 잘 달아두고는 일어나서 한 권을 더 찾으려는 때에, 종완을 곁눈질하다 그가 두 눈을 새빨개진 채로 부릅뜨고 죽어라 버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욱사는 다른 책으로 바꿔와서는 침음했다.
“자.”
종완은 목을 꼿꼿이 세우고 말했다.
“안 졸려!”
욱사는 책을 펼쳐 들고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응.”
종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그저 ‘볼’ 뿐이고, 다른 것은 하지 않지.”
“…….”
욱사는 방금 전 정말로 무의식적으로 지나가다 보았을 뿐인데, 변명하고 싶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망설이는 사이 귀가 살짝 붉어지자 그는 일어나서 안식향 두 조각을 가져다가 탁상의 작은 향로에 넣었다.
짙은 향기가 서서히 퍼져나가고, 종완은 원래 잘 수 없을 것 같았으나 안식향의 냄새를 맡고는 눈이 구리 방울 만큼 커지도록 번쩍 뜨였다.
올 것이 왔구나.
종완은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을 했다.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욱사는 평상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원래 속내가 이리 깊었는데, 풍월(風月)의 일을 이렇게 잘 알면서 앞서 자신을 어지럽게 하는 것도 알았다.
종완은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너 마음이 아주 불결하구나.”
“…….”
욱사는 탁상의 향로를 보고 알아차리고는 급히 말했다.
“내가 향을 피운 건, 나는…….”
소년 욱사는 책을 들고 있는 손을 작게 떨며 같고 다름을 가리고 싶고, 또 이 말을 꺼내는 것은 너무나도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어 화난 귀가 더 빨개졌다.
종완은 삶의 흥미라고는 없이 침상에 드러누워 운명의 심판을 기다렸다.
“내가 너를 얕봤어.”
욱사는 참아내는 숨이 가라앉지 않아 온 힘을 다해 억누르며 한 자씩 끊어 말했다.
“난, 널, 건드리고, 싶지, 않아,”
종완은 한 글자도 믿지 않았다.
종완은 졸린 눈으로 흐릿하게 욱사를 한 번 보고는, 약간의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욱사와 상의를 시도했다.
“욱사……내가 사적인 얘기 좀 물어도 될까?”
욱사는 속으로 한 박자를 빠뜨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무, 무슨 사적인 얘기?”
종완은 착실하게 물었다.
“침상에서, 위에 있는 게 좋아 아니면 아래가 좋아?”
욱사는 얼이 빠져서 답했다.
“무슨……위아래?”
종완은 아랫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그 뭐……네가 아래에 있는 걸 좋아하면 사실 이 향을 피울 필요가 없어. 나는 네 바람이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나를 구하는데 그렇게 은자를 많이 썼고 나도 네 돈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큼……내가 오늘 너무 지치고 졸리고 상처까지 입었지만 사소한 일이지. 난 요즈음 힘이 세서 지금 네게 그럴 만큼은…….”
“좋아하지 않아!”
욱사는 마침내 알아듣고는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서안 위에 던졌다.
“난 어느 것도 좋아하지 않아!!!”
종완은 “허”하는 소리를 한 번 내고는 네가 귀신이라는 걸 믿겠다며 속으로 말했다. 그는 상의한 보람이 없어 다시 드러눕고는 계속해서 기다렸다.
욱사는 화난 채로 책을 주워들어 계속해서 보았다.
두사람은 다시 반 시진을 대치했다.
종완은 눈에 핏발이 가득 선 것이 확연히 잠을 자지 않은 모양새였다.
욱사는 화가 들어차 명치가 갑갑했다. 그는 종완에게 재차 이런 식으로 시달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부아가 터지려는 폐를 억누르며 몸을 일으켜 다시 자신의 항로에 안식향 몇 조각을 넣었다.
소년 욱사는 강직하기 그지없어서, 종완이 잠에서 깨어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스스로가 결백해질 것이라고 여겼다.
침상 위의 종완은 곧 눈물 없는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졸려 죽겠는데 욱사는 더 향을 태워 그가 향을 쐬게 하다니!
“너 이건 무슨 취미야…….”
종완은 졸려서 헛소리를 해댔다.
“난 잠시 죽은 개 마냥 잠들어 있었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
욱사는 잠시 멈추었다가 격앙된 것 같기도 한 모양으로 또 향을 한 움큼 집었다.
종완은 완전히 풀이 죽었다.
자신보다 더한 고집이었다.
그는 이번에 상태가 좀 약해져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 것을 걱정했다.
종완은 현실을 간파하고 자신이 도망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종완은 처량하게 말했다.
“욱사, 내가 이번에 자고 일어나면 진짜 남자가 되는 거 맞아?”
욱사는 두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때리고 싶다.
종완은 끝까지 단념하지 않고 손을 들어 자신을 스스로 세게 물었다.
“너!”
욱사는 기가 막혔다.
“뭐하는 거야?!”
종완은 졸려서 말하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난 널 기다리고……의도가 불순…….”
욱사는 급히 말했다.
“너 나한테 자자는 거야?”
종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면 너에게 욕보여질 텐데…….”
“그럼 도대체 뭘 기다리는 거야?!”
욱사는 화가 나서 말을 가리지 못했다.
“네가 지금 이 정신인데 내가 정말로 뭘 하길 원했으면 잠에서 깨어 있든 말든 네가 막을 수 있어?! 꼭 내가 네게 무슨 짓을 해야 했나. 이제 단념하고 자지?!”
종완은 마침내 확실한 말 한 마디가 나오자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거봐! 역시 날 욕보일 생각이었지!”
…….
“풉…….”
종완은 옛일을 생각하며 웃다가 사레가 들려 손에 든 약사발을 엄 집사에 넘겨주었다.
“쿨럭……안 마셔요.”
엄평산은 말을 하려다 멈추고는 약사발을 든채 한참을 있다 말했다.
“그제 밤에, 욱왕부의 차를 타고 돌아오신게 맞습니까?”
종완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엄평산은 머뭇거리며 물었다.
“욱 소왕야를 만나셨습니까?”
욱가의 다른 사람이라면, 한밤중에 공공연히 길거리에서 사람을 납치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만났습니다.”
종완은 침상 머리맡에 기대어 욱사의 불길한 그 말을 떠올렸다.
‘한번 웃으면 한번 울게 해주지.’
어쩐지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말문이 막혔다.
“소년 시절보다……많이 변했어.”
* 안식향은 유명한 약재로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모든 사기를 진정시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안식향의 주 효능은 정신을 안정시키고 기와 혈의 순환을 촉진하는 것으로 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의식이 혼몽할 때 사용합니다. 갑작스러운 심장부위 통증의 완화 효과가 있으며 기타 복통, 산후혈운, 기침, 소아경간, 비증 등에 사용합니다. 방부, 소독 효과도 있습니다.
약재로 사용 시 주로 소량을 가루약이나 환약 형태로 복용하며, 태운 증기를 상처에 쏘이기도 합니다.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물에 넣고 끓여 그 증기를 쏘이기도 합니다. 짙은 농도로 흡입 시 눈이나 코, 목 안 등을 자극하므로 유의해야 하며, 10~15g 이상 복용 시 체온이 내려가며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므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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