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완은 대낮부터 장서각에서 욱사와 한바탕 지혜와 용기를 겨룬 탓에 거처로 돌아와서는 정신이 없어 저녁에 일찌감치 자리에 들었다. 그는 잠이 적은 탓에, 일찍 잠자리에 드니 한밤중에 깨어나 침상에서 엎치락뒤치락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처음 경중에 왔을 때 욱사의 몇 년 동안의 일을 임사에게서 듣고도 종완은 황제와 다른 이들이 욱사를 너무 제멋대로 버릇없이 키웠고, 어디까지나 자신이 떠난 당시 욱사는 십대에 불과했으니 소년기의 심성이 불안정하여 장성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최근 보름 동안 두 차례 욱사와 만난 결과 종완은 암암리에 경악했다.
지금의 욱사는 성정이 괴팍하여 눈 속에는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음산하고 사나운 기운이 서려 있었고, 마치 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을 데리고 함께 죽을 작정인 것처럼 보였다.
이 깊고깊은 원한은……도대체 어디에서 난 것인가?
종완은 자신의 팔을 베고 있었는데, 마음이 심란하여 막 몸을 일으켜 등불을 켜려고 했을 때 창이 작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종완은 숨을 죽였다. 잠시 후, 창문 밖에서 누군가가 가볍게 세 번 창을 두드렸다.
종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일어나 상의를 걸치고 침상에서 내려와 창문을 열었다. 임사는 가볍게 몸을 돌려 들어왔으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무슨 일로 왔어?”
종완은 등불을 켜고 조용히 말했다.
“말했잖아, 내가 부르지 않으면 올 필요 없다고.”
임사는 종완에게 예를 갖추고는 종이와 붓을 찾을 겨를도 없이 손짓했다.
[욱 소왕야의 일입니다. 제가 몇 가지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종완은 빠른 걸음으로 탁자 앞으로 걸어가 글을 썼다.
[어떻게?]
임사가 손짓했다.
[먼저 주인께 한 마디 묻겠습니다. 욱 소왕야의 생신을 아십니까?]
종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썼다.
[태화 원년 3월 16일 묘시 생.]
그는 욱사와 반년 동안이나 함께 살았고, 그때 쯤 욱사는 아직 나이가 어려 액막이 도화목패를 지니고 다녔다. 종완이 기억하기고 그 자그마한 목패에는 ‘삼월생’이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언젠가 그 목패를 가지고 욱사를 놀리며 그에게 생일을 물은 적이 있었고 소년 욱사는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해주었다.
임사가 손짓했다.
[확실한 것입니까?]
종완은 잠시 행동을 멈추었가다, 눈썹을 찌푸리며 써내려갔다.
[무슨 뜻이야?]
액막이 목패는 경중 어느 절에서나 구할 수 있으니 자연히 증거로 삼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확실할 수 있을까? 종완은 욱사가 태어나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더욱이 욱사는 안국 장공주가 붕어한 선제의 곁을 지킬 당시 황릉 별장에서 태어났으며, 당시 장공주는 반 개월 정도 조산했다고 전해졌다. 경중의 태후가 태의와 아이를 받을 유모를 보낼 겨를도 없어, 황릉 별장의 노태의가 임시로 아이를 받았다. 정황이 도대체 어떠하였는지 아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단지 장공주의 조산에 난산이 겹쳐 회복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이후로는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만 알았다.
임가사 손짓했다.
[욱 소왕야의 생신은 제가 최근에 찾아낸 것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종완은 돌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렴풋이 무언가를 알아차렸지만 단념하지 않았다.
종완은 자리에 앉아 낮게 말했다.
“말해.”
임사는 수화로 말했다.
[사황자 전하쪽에서 요 몇 년 간 암암리에 계속해서 욱 왕야의 출신에 대해 살피고 있고, 제가 적지 않은 노력을 들였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사황자 전하께서는 근 1년 동안 이런 생각은 없으셨는데, 최근 사전하께서 오전하쪽에 심어놓은 정탐꾼을 통해 그 내막을 알게 되셨다고 합니다.]
종완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쳐지나갔다.
“모두 조사하고 있었다고……하, 욱사는 선경의 친종형인데 그 마저도 파헤치고 들다니…….”
임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서 손짓했다.
[친척 관계이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찾아낸 것이 저희보다 좀 더 많았습니다. 오황자 전하께서 조사한 바로는, 안국 장공주가 태유(太裕) 47년 6월 태의원 호태의의 진찰 중에 임맥이 잡혔고, 그해 진단 결과가 현재 오전하 부중에 있습니다.]
태유 47년은 선황제가 죽은 그 해였다.
종완이 눈썹을 찡그렸다. 이것은 문제가 없다.
장공주는 6월에 임신했고 선황제는 해를 넘기고 정월에 붕어하여, 당시 장공주는 임신 중에 지나치게 슬퍼하다 사고가 날 뻔하였고 그 후 황릉으로 가서 3월에 욱사를 낳았다.
임사가 손짓했다.
[관건은, 오전하의 조사 결과 당년 3월 황릉 별장에서는 아이가 태어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종완은 심장이 점점 빨리 뛰었다. 그는 갑자기 눈앞이 어질하여 정신을 가다듬고는 글씨를 썼다.
[증거는?]
임사가 손짓했다.
[황릉 별장에서 시중을 들던 사람 중 아직 살아있는 이가 몇 명 없어 한둘을 애써 찾아냈으나 허드렛일을 하던 하인이라 내막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기를, 3월 내내 황릉 별장에서는 울음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종완은 눈앞이 어지러운 것을 애써 참고 썼다.
[욱사가 태어났을 때부터 잘 울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 그는 조산하지 않았어? 일찍 태어난 아기는 몸이 약해서 아마 울음 소리를 내지 못할 수도 있어…….]
임사를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아닙니다. 만일 정말 몸이 약해 울음을 터뜨리지도 못했다면 그 태의들은 난리가 나고도 남았을 겁니다. 장공주와 욱 왕야의 적장자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태후가 보낸 사람들이 들락날락해도 그들이 그렇게 급박하지는 않아보였고, 심지어 장공주를 보살피던 유모가 출산 후에 빛에 노출될까 봐 바람도 맞지 않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애초에 산실에 간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종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글씨를 썼다.
[그럼 언제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종완은 임사를 올려다보며 조금의 희망을 품고 물었다.
“4월?”
순산했다면 4월이 맞으니 혹시 다르게 기록된 것인가.
임사가 고개를 저었다.
종완이 글씨를 썼다.
[5월?]
임사는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종완은 손가락 끝은 가늘게 떨었다.
[6월?]
임사는 손짓했다.
[장공주는 황릉 별장에서 7월까지 요양했고 그때쯤 본래 시중들던 하인은 이미 몇 번 바뀌었습니다. 자손 대대로 황릉을 지키던 이들도 대부분 바뀌었고요, 오전하께서 찾으신 이 튼튼한 하인이 바로 이때 바뀌어 나왔다고 하는데, 그가 떠나던 날, 마침내 황릉 별장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임사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수화를 했다.
[당일은, 7월 15일이었습니다.]
종완은 손에 쥐고 있던 붓을 내려놓았다.
안국 장공주는 전 해 6월에 임맥이 진찰되었는데, 한해가 지나 7월 15일에 아이를 낳았다고……이는 어찌 되었든 그녀의 아이가 아니라는 소리다.
임사는 수화를 했다.
[그 하인이 떠난 후 며칠도 되지 않아 황릉 별장의 관리들이 유모를 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임사는 또 말했다.
[다시 2, 3일이 지난 후, 안국 장공주는 어린 세자를 데리고 경중으로 돌아왔습니다.]
종완은 고요한 얼굴빛으로 매우 빠르게 다음과 같이 썼다.
[돌아올 때에 바람을 쐬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을 데리고 오지는 않았나? 안국 공주 곁에 특별한 신분의 사람은 없었나? 귀경한 후, 장공주가 촌락에 누군가를 보내지는 않았나?]
임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장공주가 데려온 사람들은 각각 모두가 신분이 분명하고 특이한 점은 없습니다.]
종완은 이를 악물었다
그 여인은 분명 욱사를 낳은 당일에 처리되었을 것이다.
임사는 손짓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욱 소왕야의 생모 신분이 지극히 낮아 장공주가 염려할 필요가 없으나 나중에 귀찮을 것 같아 쉽게쉽게 그녀를 처리했거나, 아니면…….]
종완은 속으로 ‘그녀’의 신분이 드러나서는 안 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녀’를 보기만 해도 여려 비밀을 알수 있을 만한 사람.
이 사람은 누구인가?
종완은 지금 이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임사를 바라보며 정색하고는 글을 썼다.
[그 진단 결과를 선경에게서 훔쳐낼 수 있어?]
그 진단만 없애버리면 이 건은 흐지부지될 것이다.
생일은 잘못 기록할 수도 있었고, 장공주가 잊어버렸을 수도 있었다. 안국 장공주가 6월에 회임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기만 하면 된다.
일생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증거만 없앤다면 그들은 영원히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임사는 난처하게 종완을 바라보았다.
종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군.
이렇게 중요한 것을 선경이 경솔히 남의 손에 넘어가게 할 리 없었고, 임사를 통해 정말로 그 진단을 훔쳐낸다 해도 그것은 자연히 선영의 손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두 사람 중 누구의 손에 있든 똑같다.
선경이 태자의 자리를 원하는데, 선영이라고 그러지 않겠는가?
숭안제는 일찍히 욱사를 편애하는 것에 대해 주위 사람들의 의심을 샀다. 사황자와 오황자가 대립하는 사이 암암리에 자신들의 다툼이 남 좋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닌가 여길 수도 있지 않은가?
만일 욱사의 생부가 숭안제라면?
만일 장래에 무덤이 허물어진다 해도 숭안제가 임종 전에 조서를 남겨 욱사의 신분을 표명한다면?
그 몇 해 동안 암투를 벌인 것은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만약 욱사가 정말로 숭안제의 사생자이고 선영과 선경이 진상을 알아내고 분노한 순간 첫 번째로 르를 없애려 할 것이다.
종완은 이를 갈았다.
“그의 처지는…….”
임사는 종완의 심사를 파악하고 타일렀다.
[지금은 욱 소왕야가 안국 장공주의 소생이 아니라는 것만 밝혀졌을 뿐, 그의 생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무엇도 단정할 수 없으니 그들은 아직 감히 함부로 손을 쓰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임사는 한 가지 가능성에 생각이 다다라, 손짓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장래에 황제가 서거할 때에, 정말로 욱 소왕야가…….]
임사는 하늘을 가리켰다. 의미는 자명했다.
종완은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욱 왕야는 잊었어?”
임사는 잠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종완은 붓을 집어들고는 빠르게 써내렸다.
[욱 왕야는 선경의 외숙이야! 한쪽은 다른 사람의 아들이고 한쪽은 자신의 생질인데, 네가 그라면 누구를 돕겠어?!]
임사는 종완처럼 훤히 꿰뚫지 못해 잠시 생각하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임사는 망설이다 주저하며 말했다.
[주인께서는, 욱 왕야께서 최근 몇 년 간 기실…….]
종완은 대단히 지쳐서 말했다.
“난 몰라…….”
종완은 떨리는 등불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나는 다만, 세상 사람들은 이익이 없으면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밖에 몰라.”
임사는 간신히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모든 게 추측일 뿐입니다.]
“정말로 그들에게 무언가를 알아내기에는 늦었어.”
종완은 서안 위의 종잇장을 전부 헤아려 화로 속에 던져넣었다. 불씨가 종이를 감싸고는 훅하고 치솟아 올랐다.
종완이 말했다.
“만수절 후에, 너는 아이들을 따라 검안으로 돌아가. 나는 경중에 남아 있을 테니.”
* 욱사의 생일이 나오는 부분의 '태화 원년'
: 원문에는 '천화 원년'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설정 오류가 아니면 잘못 적힌 것 같아서 임의로 연호를 태화로 고쳤습니다(서장 참조).
- 귀절鬼节, 중원. 백중날.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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