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当年万里觅封侯 ∣ 진강판

제 13장

by li_in 2020. 10. 20.

 

 

 어릴 적부터 자신을 돌봐준 풍 집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방 안의 십여 명의 하인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욱가의 조상들이 하늘 위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소년 욱사는 이를 악물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녹근 요리를 접시째 들어 종완의 앞에 놓았다.

 

 욱사는 귓바퀴가 조금 홧홧해졌지만 애써 가라앉히고는 말했다.

 “그렇게 먹고 싶으면, 네가 직접 집어 먹어…….”

 

 종완은 자신의 앞에 놓인 요리를 보고 실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욱사가 역겨움을 느끼도록 하지 못했다.

 

 그는 고기 요리를 좋아하지도 않고, 아무리 잘 조리해도 비린내가 나는 녹근 요리를 먹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먹고 싶다는 말을 꺼냈던 건 순전히 이 요리가 욱사와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풍 집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욱사가 저 요사스러운 것에게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이 기쁘고 위안이 되었다.

 

 욱사는 곁눈질하며 계속해서 종완에게 주의를 기울였는데, 종완의 기분이 약간 가라앉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이 종완의 체면을 깎아내린 것인가 생각해 고심하고는 분부했다.

 “내일부터…….”

 

 풍 집사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분부를 받들었다.

 

 욱사는 종완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하루 세끼 모두, 녹근을 준비해둬.”

 

 “큽…….”

 종완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아니, 나는…….”

 

 풍 집사는 종완을 흰눈으로 흘기며 속으로 미인은 화를 부른다며 투덜거리고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

 

 욱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종완을 바라보았다.

 

 종완은 고충이 있어도 입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너 그 기대하는 눈빛은 무슨 의미야? 내가 무릎 꿇고 은혜에 감복한다고 말하기를 원한다는 건가?

 

 종완은 쓴웃음을 지은 얼굴로 겨우 답했다.

 “감사합니다……세자.”

 

 욱사는 이해득실을 생각하고 각 방면의 균형을 맞추었고, 스스로가 이 일에 잘 대처했다고 느끼며 밥을 반 공기는 더 먹었다.

 

 종완은 제 발등을 찍었음을 느끼며 근심과 고뇌에 가득 찬 채 좋아하지도 않는 녹근을 지키고 앉아, 밥은 몇 입 먹지도 못했다.

 

 오찬을 들고 난 후, 욱사는 다시 책을 보러 갔다. 종완은 그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역겹게, 계속 역겹게 만들어야 했다.

 

 욱사를 불쾌하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어떻게 도망쳐서 선서들을 찾으러 간단 말인가?

 

 욱사는 종완에게 서안 자리를 넘겨주고 자신은 창가의 나지막한 침상 위에 앉아 평어와 주해를 다는 일에 몰두했다.

 

 종완은 핑계를 대며 욱사에게 가까이 가려 했다.

 “여기 서안은 빛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 아니면 나도 네가 있는…….”

 

 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을 집어 들고 서안 앞으로 돌아와 흔쾌히 낮은 침상을 양보했다.

 

 두 사람은 자리를 바꾸었고, 여전히 두 장 정도 떨어져 있었다.

 

 종완은 욱사를 콱 물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욱사는 종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명백했고, 종완은 하는 수 없이 다른 방도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욱사…….”

 문득 종완이 입을 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작년부터 장공주께서 네게 혼담을 전해주시기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정해졌어?”

 

 욱사는 잠시 멈칫했다가 대답했다.

 “그저 그런 혼담이 있다고만 하셨을 뿐……아직 정해진 것은 없어.”

 

 “어?”

 종완은 눈을 빛냈다.

 “그럼 이미 상의는 되었다는 말 아니야? 어느 집안에서 혼담을 넣었는데? 아니면……삼공주?”

 

 욱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꾸했다.

 “삼공주는 아니야. 함부로 말하지 마.”

 

 “네 황제 외숙께서 너를 그렇게 아끼고 아들이나 다름없이 대하시는데, 너를 작은 사위로 들이고 싶어 하시지 않는다는 말이야?”

 종완은 단념하지 않고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그럼 그 집안에 대해 얘기 좀 해봐……삼서육례에서 어느 단계까지 밟았는데?”

 

 욱사는 더 이상 붓을 대지 않고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아무런 단계도 밟지 않았어. 그저 논의만 했을 뿐이야.”

 

 종완은 안달이 났다.

 “그게 도대체 어느 집안인데, 좀 말해봐……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난 말할 사람도 없다고.”

 

 욱사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네가 그걸 알아서 무얼 하려고?”

 

 종완은 무고하다는 듯 말했다.

 “장래에 그녀가 본부인이 되고 내가 첩이 되면, 나중에 고생하지 않도록 미리 알아둬야지.”

 

 욱사는 사레가 들렸다. 그는 무언가를 설명하려 했으나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책을 보며 종완을 무시했다.

 

 “왜 그래?”

 종완은 가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욱사……세자빈을 들이고 나서도, 날 보러 별원에 와줄 거야?”

 

 “…….”

 

 종완은 책을 내려놓고 낮은 침상 위로 기대어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람을 많이 데리고 와서 여기까지 밀고 들어오게 될까?”

 

 욱사는 못 들은 척했다.

 

 “그녀가 날 좋아할까?”

 

 “그녀가 내게 규칙을 정해줄까?”

 

 “나한테 여우같은 거라고 욕할까?”

 

 “유모를 시켜서 날 바늘로 찌르라고 시킬까?”

 

 욱사는 깊히 심호흡을 했지만, 여전히 종완을 무시했다.

 

 종완은 자신이 성가시게 군다는 자각이 조금도 없는지 계속해서 물음을 던졌다.

 “그때가 되어도, 우리가 이렇게 함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내가 이후에도 너와 함께 식사할 수 있을까?”

 

 종완은 쓸쓸한 눈빛으로 욱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다시 녹근 요리를 먹을 수 있을까?!”

 

 욱사는 책을 내려놓고 종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두 눈에 은은히 노기가 묻어났다.

 

 종완은 놀라 금세 꼬리를 내리고 더는 묻지 않았다.

 

 방안이 조용해진지 반 주향이 지나고, 문득 욱사가 말했다.

 “걱정 마.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이 별원에 들어올 수 없어. 물론……장공주와 부왕도, 들어오지 못해.”

 

 종완이 멍해지자 욱사는 생각하고는 또 말했다.

 “오늘부터 별원의 수비를 배로 늘리면, 빈틈없이 너를 보호할 수 있을 거야.”

 

 “아아니 아니…….”

 종완은 비명을 질렀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괴롭히는 게 무서운 게 아니야. 정말로. 그러니까 사람을 더 불러올 필요 없어!”

 

 욱사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걱정 마.”

 

 종완은 방금 전 나불대던 자신의 입을 한 대 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보통은, 네가 어떻게 비호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나를 찾아와서 괴롭힐 거야.”

 종완은 최후의 발악을 했다.

 “네가 정말 나를 위한다면, 일부러 나를 냉대하고 별원의 하인들을 모두 거둔 뒤에 나를 헐벗고 굶주리게 해야 내가 편안해지는 거라고…….”

 

 욱사는 대꾸했다.

 “그렇게 하면 네가 도망갈 수도 있어.”

 

 종완은 말문이 막혔다. 욱사……멍청하지 않구나?

 

 욱사는 반문했다.

 “그런 괴상한 말은 어디에서 들은 거야?”

 

 “화본에서.”

 종완은 비참한 듯이 답했다.

 “거기엔 다 그렇게 쓰여 있어.”

 

 욱사는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화본? 본적 없어.”

 

 종완은 흥을 되찾았다.

 “내가 나가서 몇 권 사다 줄까?”

 

 욱사는 조금의 흥미도 없었다.

 “보고 싶지 않아.”

 

 “알겠어.”

 종완은 풀이 죽어 잠시 얌전해졌다.

 

 거의 반 시진 만에 종완이 불쑥 다시 물음을 던졌다.

 “너 그래서 그 혼담을 나눈 집안이 어딘데? 좀 전에 말 안 해줬잖아.”

 

 욱사는 정말로 혼담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출가하지 않은 낭자에 대해 논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종완이 계속 물어볼 것 같았다. 욱사는 주저하다 말했다.

 “어머니께 듣기로는……문국공文国公 댁이라고 들었어.”

 

 종완은 생각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문국공에게 욱사와 연배가 비슷한 손녀가 있었던 것 같다.

 

 “집안의 격이 제법 잘 맞네.”

 종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국공의 작은 손녀 맞지?”

 

 욱사는 시선을 아래로 드리우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래? 네게 들어온 혼담이고 좋은 일 아니야?”

 종완은 무미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집안도 잘 맞고.”

 

 욱사는 말을 하려다 멈추고는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종완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문득 어딘가 미심쩍음을 알아챘다.

 “욱사……혹시 이 혼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욱사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어머니께서 나를 위해 고른 자리야. 당연히 마음에 들어.”

 

 “아니.”

 종완이 욱사를 위아래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정말로 좋으면 내가 아까 물어보자마자 말했어야 했어. 네가 잡담하는 걸 싫어한다고 해도, 참지 못하고 두 마디는 꺼냈을걸. 정말로 누군가를 흠모한다면……그건 숨길 수 없어.”

 

 욱사의 손에 들린 붓이 잠시 멈추었다. 책 위로 떨어진 작은 먹물 방울이 천천히 번져나갔다.

 

 정말로 누군가를 흠모한다면, 숨길 수 없다.

 

 “난…….”

 

 욱사는 한참 뒤에야 말을 이었다.

 “문국공부인이……일전에 손녀를 데리고 공주부에 꽃구경을 온 적이 있어.”

 

 욱사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어머니께서는 그날도 나를 불러 문국공부인께 안부를 전해달라 하셨는데, 사실은…….”

 

 종완이 깨달았다.

 “사실 네게 미리 상대를 소개해 주려고 한 거였어? 암암리에 만나지 못한다면 윗사람에게 문안을 드릴 때를 핑계로 멀리서 보는 수밖에 없지.”

 

 욱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완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어땠는데? 아름답지 않았어?”

 

 “아름다웠어.”

 욱사는 주저하며 중얼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혼인하고 싶지 않아.”

 

 종완이 생각해보니, 문국공의 손녀의 용모는 좋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안국 공주의 눈에 들지 못했을 터다. 그러나 아마도 성품상으로는 욱사의 호감을 사지 못한 것 같았다. 욱사는 군자이고, 군자는 뒤에서 남을 헐뜯어서는 안 된다.

 

 욱사는 붓을 내려놓고는 말했다.

 “그리고……문국공부인의 모습을 보니, 기실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 것 같았어.”

 

 “하?”

 종완은 아연해졌다.

 “너와 인척을 맺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하자면 그 집안에서는 너와 인척이 되면 자신들보다 지위가 높은 집안과 교분을 맺는 셈이잖아? 어째서 내켜하지 않아?”

 

 욱사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 하지만 문국공부인이 나를 보고는 말을 얼버무리는 걸 보면……눈빛이 별로 좋지 않았어. 나를 아주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어.”

 

 종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이 걱정인 건지. 안국 장공주의 적자는 너 하나라 장래에 무사 평안히 작위를 물려받게 될 것이니 그걸 걱정하는 건 아닐 텐데……황제께서 널 그렇게 편애하시는데, 장래에 무슨 걱정이 있겠어?”

 

 욱사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일이 어머니의 의견이라 문국공부(府)에서 거절하지 못하는 게 아닌지 염려가 돼.”

 욱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본래 혼인 생각은 없었는데, 그것이 다른 사람을 강요하는 것이라면……하고 싶지 않아.”

 

 사실, 안국 장공주가 스스로 며느릿감을 골랐다면 마음에 든 것이 누구든 간에 은혜에 감사를 표할 뿐, 감히 무슨 말을 꺼내겠는가.

 

 “그럼 공주께 가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네.”

 종완이 말했다.

 “싫다고 말이야.”

 

 욱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부모의 명에…….”[각주:1]

 

 종완은 실소를 터뜨렸다.

 “이건 일생이 걸린 일이야! 아니면…….”

 

 종완은 거리낌없이 말했다.

 “네가 한번 날 데리고 나가. 내가 보증해. 문국공부에서 아예 이 혼사를 물릴 구실도 배짱도 기백도 생기게 해줄게.”

 

 욱사가 주저하며 말했다.

 “어떻게 할 작정이야?”

 

 “그건 묻지 마. 확실한 건 네 체면을 손상시키지는 않을 거야.”

 종완은 필사적이었다. 그는 목덜미를 문질렀다.

 “내 명을 재촉하는군……내가 지금 너무 잘해주고 있는데.”

 

 욱사는 사실 이미 생각이 있었다. 내일 공주부로 가서 안국 장공주께 자신의 뜻을 분명히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종완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좋아.”

 

 


* 맹자 등문공하 제 3장 中, ‘不待父母之命,媒妁之言,鑽穴隙相窺,逾牆相從,則父母國人皆賤之。’ 

: 부모의 명과 중매인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구멍을 뚫어 그 틈으로 서로를 엿보고 담을 넘어 서로 따른다면, 부모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천하게 여길 것이다.

 

 

 

  1. 맹자 등문공하 제 3장 中 언급 / 父母之命, 媒妁之言 부모의 명, 중매인의 말 : 혼인의 결정에 중요시 되던 부분으로, 육례만큼 전형적이고 규범적인 고대의 혼인 제도 및 풍습.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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