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완은 마음을 굳힌 후, 선서들에게 통보했다.
종완은 그들을 공연히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대수롭지 않은 양 식사 자리에서 가볍게 말했다.
“만수절 이후 경중에 좀 더 머무를까 해.”
종완이 툭 던진 말에 아이들은 멍해졌다.
종완은 의연한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경중에 옛 친구가 몇 있는데, 지금은 움직이기 불편하니 너희들이 돌아가면 사람들을 피해서 좀 둘러볼까 싶어.”
자리한 이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종완이 무슨 ‘옛 친구’가 있단 말인가?
선종심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누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황상을 뵙고 나면……황상께서는 아마 다시 저희를 상기하시는 일은 없을 거예요. 검안 쪽도 큰일은 없을 터이니, 경중에 마치지 못한 일이 있다면 남아야죠.”
선유는 선종심을 보았다가 다시 종완을 바라보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다급하게 말했다.
“왜 남는 건데? 난 떨어져 있기 싫어! 이렇게 추운데 종완이 어떻게 견뎌! 우리 같이 돌아가자. 도대체 여기 무슨 볼 일이 있다는 거야? 아니면……형이랑 누나가 먼저 돌아가고 나는 종완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갈래. 같이 돌아가!”
“종완도 엄연히 자신의 일이 있어.”
선종심은 자신의 동생이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면서 겁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아주 싫어해서, 눈살을 찌푸리며 꾸짖었다.
“무슨 우는 소리야?! 울지 마! 참아!”
“난…….”
선유는 어릴 적부터 기가 센 자신의 쌍둥이 누나를 무서워하여 꾸지람 한 마디에도 감히 울지 못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으며 울먹였다.
“그럼 종완은 언제 돌아갈 건데? 난……난 종완이 있는 데서 기다리는 거지? 나, 난…….”
선유는 급한 마음에 아무렇게나 말을 뱉었다.
“난 아직 종완이랑 공부해야겠어!”
“누가 아니면 공부를 못하니?!”
선종심이 눈썹을 비틀어 올렸다.
“우리가 선생을 못 부르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우는 거야?”
선유는 곧바로 눈물을 거두며 깜짝 놀라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종완은 한숨을 쉬었다. 선종심이 남자였다면 2년도 안 걸려 집안을 짊어지고 가세를 거뜬히 일으켜 세울텐데. 그럼 자신도 정말 안심할 수 있을 테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종완은 선서 쪽을 바라보았다. 선서는 걱정스러운 듯 밥을 넘기며 한참 만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우리와 함께 돌아가. 종완이 여기에서……종완이 우리에 대해 마음을 놓지 못하면, 우리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선종심이 눈썹을 찡그렸다.
“오라버니, 어떻게 오라버니까지…….”
선서는 고개를 들어 선종심을 한 번 노려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노했다.
“경중이 좋은 곳이더냐? 너희들은 어려서부터 검안에서 근심 걱정 없이 자랐으니 우리가 지게 된 죄를 어찌 알겠어? 그때 시시각각 마음 졸이던 날을 생각하면 나는 하루도 떠올리기 싫다…….”
“걱정 마.”
종완은 선서의 손을 달래듯 두드렸다.
“뭔가를 하려는 게 아니야. 그저…….”
“다들 어떻게 종완 생각은 조금도 해주지 않는 거예요?”
선종심이 끝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종완은 올해 스물 넷이라고요. 보통 집안에서는 벌써…….”
선종심도 여자아이라, 아무리 성격이 강해도 뱉을 수 없는 말이 있었다. 그녀는 약간 붉어진 안색으로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만수절이 끝나면 우리 왕부는 완전히 안정되는 셈이에요. 그가 우리를 몇 년을 보살폈는데, 어쨌든 제구실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요?”
선유는 멍하니 되물었다.
“무슨……제구실?”
선종심은 두 뺨이 벌겋게 달아올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황상이 종완을 노적에서 면해주셨으니, 대사를 치르는 것이 마땅하지요. 검안에 무슨 고문의 귀녀가 있겠어요? 돌아간 후에는 적당한 짝을 찾기 힘들 테니 지금 경중에서 혼사를 정하려는데 다들 어째서 이리…….”
선종심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탕을 한 입 마시고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중얼거렸다.
“혼사가 정해지면……자연히 부인을 데리고 돌아올 텐데, 뭐가 그리 조급해?”
선서는 고개를 돌려 종완을 바라보며 기뻐했다.
“그런 거였어? 내게 형수님이 생기는 건가?”
선유 역시 그를 쳐다보며 아연히 물었다.
“종완……그런 의미였어?”
종완은 말로 표현 못 할 복잡함을 느끼며 세 사람을 바라보다, 헛웃음을 지었다.
“뭐라고 해야하나…….”
선종심은 무척 궁금증이 생겼으나 아가씨의 입장상 많은 말을 입에 올리지 못하고 에둘러 떠보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이미 마음에 둔 집안이 있는 거예요?”
선유가 흥분하여 말을 이었다.
“형수님은 곱게 생겼어?”
이렇게 되니 종완은 잘못된 걸 알면서도 물릴 수가 없어 어색하게 대답했다.
“곱지…….”
선종심은 물음을 참지 못했다.
“나이는 몇 살인데요?”
종완이 어렵사리 대답했다.
“스물……셋.”
세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식당에 일순 적막이 감돌았다.
어린 두 사람은 입을 떼기 어려워했고, 선서 역시 머뭇거리며 말했다.
“나이가 너무 많지 않아? ……본인에게 그리 박하게 굴지 않아도 돼.”
종완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삼키고 애써 웃으며 말했다.
“박하다니……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작지는 않지.”
선종심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굳이 그렇게 나이 많은 이를 찾는 건데요?”
종완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나도 나이가 적지는 않아. 그리고 그 사람이……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도 않고.”
선서가 깜짝 놀랐다.
“만나 봤어?!”
종완은 후회막급한 심정으로 답했다.
“응…….”
종완은 자기 자신을 물어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도대체 왜 이런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무슨 이유에서든 결국 그들을 속일 수 없을 텐데?!
선유는 두 눈을 빛냈다.
“그럼 말 좀 해봐. 키는 어느 정도인데?”
종완은 암담한 심정으로 조심하지 못하는 입을 탓했다.
“나보다 조금 커.”
“허…….”
선유는 적잖이 놀랐다.
“종완보다 크다고!!!”
선서와 선종심의 얼굴색도 급변했다.
종완이 무슨 낭자를 찾아온 거지?!
“아, 아니.”
종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나랑……비슷하지. 나……난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종완이 좋다면 됐어요.”
선종심은 복잡한 표정으로 종완을 쳐다보다, 참다못해 다시 물었다.
“그럼……성격은 어떤데요?”
그 나이에 그렇게 건장한데도 종완이 좋아하게 될 정도면 그 사람은 분명 어딘가 남보다 뛰어난 데가 있을 터였다. 성격이 무척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온유하고 자상한 사람인가?
“성격은…….”
종완은 속으로 말했다.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시시각각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거나 정신 나간 행동을 하는 것 같아.
이 말을 입 밖에 낸다면 선서들은 아마 그를 죽어도 자신을 경중에 남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이건 무슨 괴물에게 반한 꼴이었다…….
종완은 필사적으로 버텼다.
“아주 좋아…….”
셋은 서로서로를 마주 보고는, 종완 본인이 좋아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한 끼 식사가 끝나고, 모두는 각자의 생각을 안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종완은 한숨을 내쉬고는 두어 번 웃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막 방으로 들어오자, 밖에 있던 엄평산이 따라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요?”
종완은 화롯가에 앉아, 부젓가락을 들어 자신의 손난로에서 숯을 하나 꺼내 화롯불에 넣었다. 화로의 숯을 뒤적이고 가볍게 바람을 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숯불이 열기를 내기 시작했다.
엄평산은 문과 창을 잘 닫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쪽 사람 말을 들어 보니, 삼황자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종완이 눈썹을 비틀었다.
삼황자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다. 삼십여 년도 겨우 끌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왜 지금 같은 시기에 일이 터지는 것인가…….
엄평산은 근심이 가득했다.
“만수절을 지낼 때까지 몇 달만 더 끌면 좋겠는데……만수절 전후에 상을 당하면 우리는 먼저 갈 수 없게 되잖습니까.”
“그래요…….”
종완이 물었다.
“태의는 뭐라고 했나요?”
엄평산이 답했다.
“태의의 말로는, 춘분을 견뎌내면 크게 좋아질 것이라고 했답니다.”
종완은 새된 한숨을 내쉬었다.
“춘분까지 살지 못한다는 소리인데……마침 만수절 전후군요.”
엄평산은 참지못하고 낮은 소리로 불평했다.
“때를 잘 고르지 않고서.”
종완이 물었다.
“황상께서도 이를 모르지 않으실 텐데, 만수절은 그대로 지낸다던가요?”
“지낸답니다.”
엄평산은 경멸을 담아 일소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삼황자는 이제 죽 한술 뜨기도 벅차고, 황제를 만나지 못해 크게 상심하여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최근만 해도 종친을 초대하고 베풀어 배불리 먹고 자도, 아무도 편하지 못하지요.”
종완은 근심에 휩싸였다. 이러다가는……또 몇 달 더 머무르며 지체해야 할 것 같았다.
욱왕부 쪽을 보자면, 욱사는 연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본래 임사의 조그마한 과실이라도 찾아내 그를 다시 대리사에 붙잡아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며칠이 지나자 임사는 갑자기 시들해진 듯 온종일 사황자부에 틀어박혀 고개도 내밀지 않았다.
욱사는 임사가 종완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그저 이 벙어리가 천성적으로 자신과 상극이라고 생각했다. 쓸모없을 때는 맨날 눈앞에서 거슬리더니, 쓸 때가 생기니 찾을 수가 없었다.
욱사는 성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흠이 없다고 내가 그놈을 못 잡아 오나? 핑계 찾을 필요 없이 바로 데려와!”
풍 집사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무고한 사람을 잡아왔다가는, 사전하의 미움을 사지 않을지…….”
욱사가 반문했다.
“내가 미움을 살까 봐?”
풍 집사는 말문이 막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당신은 황제의 미움도 사는데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임사는 관저에서 숨만 쉬고 있었을 뿐이건만 욱왕부 사람들에게 마대가 씌워져 끌려오게 되었다.
욱사는 자리에 앉아 높은 곳에서 임사를 내려다보았다.
7년전 종완이 떠난 후, 욱사는 임사와 아무런 교집합도 없었다.
욱사는 그를 돌봐 주지도, 그를 찾아 귀찮게 하지도 않고 피차 부딪힘 없이 살았다.
임사가 함부로 욱사의 신상을 조사하기 전까지는.
욱사는 그날 정말 살심을 가지고 움직였다.
선영이 대리사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에도 욱사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선영이 감히 자신의 신상을 조사하려 했으니, 그에게 교훈을 내리지 않는다면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보지 않았으면…….”
욱사는 임사를 잠시 바라보다 뒷말을 잇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가져와.”
종복들이 무수한 형구(刑具)를 들고 와 임사 앞에 던져두었다. 1
“내 수법, 잘 알고 있겠지…….”
욱사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함부로 사사로이 벌을 주면 안 된다니 하는 말은 필요 없다. 내겐 그런 규칙은 없으니. 한 가지만 물을 것이다. 너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하나씩 천천히 가보자고.”
욱사는 고문의 도리에 밝아 결코 조급히 손을 대지 않았다. 거기다 고문에 능한 늙은 아전을 데려다가 수십 개의 형구를 하나하나 알맞게 배치하게 하여 준비만으로 임사에게 위협을 가했다.
대리사의 형구는 형부의 것보다 훨씬 정교하여 늙은 아전들이 반 시진을 만지고 나서야 정리가 되었다. 욱사는 태연자약하게 차를 맛보았다.
“안심해, 나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으니.”
임사는 형구를 보고 고개를 들어 욱사를 바라보았다.
욱사는 마침내 욱사를 거들떠보며 물었다.
“종완의 아명, 뭐지?”
“…….”
욱사는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내게 모른다고 말하지 않아도 돼. 너희 둘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으니, 나는 믿지 않아.”
욱사는 찻잔을 내려놓고 형구 하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말하기 싫다고? 좋아, 내가 먼저 말하지……. 이게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알고 싶지 않아? 내가 오늘 때마침 한가하니, 천천히 설명해 줄 수 있겠어…….”
임사는 약하게 발버둥을 쳤다. 욱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임사는 힘겹게 한 손을 들어 바닥을 짚었다.
욱사는 그를 의문스럽게 바라보았다.
임사는 두 종복에게 눌려 움직임이 매우 불편했으나, 그는 손을 들어 땅에 엎질러진 고춧물을 힘겹게 적셔 자신 앞의 푸른 돌판 위에 가져다 댔다. 한 자 한 자 총 두 글자, 종완의 아명을 적어냈다.
그리고는 머리를 조아렸다.
“…….”
한참이 지난 후에야 욱사는 비로소 말했다.
“네 이런 충의를 네 주인인 종완은 알고 있느냐?”
임사는 조금 부끄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욱사는 복잡한 심경으로 가득 늘어선 형구들을 바라보았다…….
한 시진을 사투하며 이것들을 준비해놓은 것은 무엇을 위해서였단 말인가?
“좋아. 융통성이 뛰어나군.”
그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가 봐.”
임사는 재차 머리를 조아리고는 돌아갔다.
- 형벌을 가하거나 고문을 하는 데에 쓰는 여러 가지 기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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