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当年万里觅封侯 ∣ 진강판

제 14장

by li_in 2020. 10. 25.

 

 

 다음날, 종완은 욱사와 함께 별원을 나섰다.

 

 마차 위에서 욱사는 차양을 걷어 올려 밖을 보았다가, 다시 종완을 보았다가 하며 이리저리 시선이 배회했다.

 

 종완은 욱사를 바라보며 조금 주저하며 말했다.

 “왜? 후회돼? 혹시……혼인을 물리기 싫어?”

 

 욱사는 고개를 저었다.

 “후회하지 않아.”

 

 욱사는 이루 말하기 힘들다는 듯 종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갑자기 너를 데리고 나온 것이 후회돼.”

 

 그저 공주에게 한마디 하면 능히 해결될 일을, 왜 그를 내세워 연기시키면서까지 둘러간단 말인가?

 

 종완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네 체면을 깎아 먹는 일은 하지 않을 거고, 용돈도 벌게 해줄게. 신경 쓸 것도 없는데 뭐가 문제야?”

 

 “체면이 상할까 걱정되는 게 아니야. 나는…….”

 욱사는 머뭇거리며 종완과 협의를 시도했다.

 “내가 꼭 그 말을 해야 해?”

 

 종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한마디도 기억 못 하는 건 아니지? 딱 한마디야. 내가 너한테 눈짓하면 그냥 말하면 된다고. 기억했어?”

 

 욱사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는 기진헌점(奇珍轩店;진귀한 물건이 많은 가게) 입구에 세워졌고, 두 사람은 마차에서 내렸다.

 

 “귀한 분께서 오셨군요. 오실 줄 알았으면 일찌감치 창고를 모두 열어 진기한 물건을 내어다 직접 소왕야 댁으로 보내드렸을 텐데, 어찌 소왕야께서 수고스럽게 가게로 오셨습니까? 그……하하하. 너무 촉박하군. 말도 안 돼…….”

 가게 주인은 부랴부랴 위층에서 내려와 욱사에게 예를 갖추고 직접 두 사람을 접대했다.

 “소왕야께서는……어떤 물건을 보시려는지?”

 

 욱사는 종완 쪽을 보며 말했다.

 “내가 아니라, 그가 볼 것이다.”

 

 가게 주인은 분주하게 종완의 시중을 들었다.

 

 종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시간을 질질 끌었다.

 

 한 주향이 지나자, 문국공 댁의 도령이 왔다.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그였다.

 

 문국공 댁 도령은 며칠 전 이곳에서 장식품을 주문하여 오늘 찾으러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그도 이곳에서 욱사를 마주칠 줄은 생각지도 못해 물건을 찾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황급히 인사를 올렸다.

 

 종완은 못 본 체하며 예를 표하지도 말을 하지도 않고 자신이 보던 것이나 보았다.

 

 기진헌에서는 여전히 성심스러운 시중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다구들을 보십시오. 작은 공방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이 칠 좀 보십시오. 윤이 나지 않습니까? 이 색을 다시 보면 매실의 푸른색이 아주 단정하지요. 그리고…….”

 

 “됐습니다.”

 종완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선반 위에 되돌려 놓고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담담히 말했다.

 “청색은 싫어해서.”

 

 욱사: “…….”

 

 문국공 도령: “…….”

 

 가게 주인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도련님, 방금……뭐라고 하셨습니까?”

 

 종완은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

 “나는, 청색을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색은 봐줄 수가 없어요.”

 

 가게 주인은 제 기능을 잃을뻔한 혀를 다잡고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시, 싫어하신……허?”

 

 종완은 가게 주인을 쳐다보며 한 글자씩 끊어 말했다.

 “내게 이런 색상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알겠어요?”

 

 문국공 도령은 화들짝 놀라 욱사를 쳐다보았지만, 욱사는 애써 버티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종완은 앞에 있는 선반을 슥 훑어보고는 말했다.

 “청색인 것은 모조리 부숴버려요.”

 

 가게 주인은 놀라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는 무릎을 반쯤 꿇고는 욱사를 향해 구조를 눈빛을 보냈다.

 

 욱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해.”

 

 욱왕부에서 데리고 온 하인 몇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청색인 진열품은 모조리 가지고 나가 삼베로 싸고는, 쾅쾅거리며 때려 부쉈다.

 

 문국공 댁 도령은 그 쾅쾅거리는 소리에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종완은 고개를 돌려 다른 선반 위의 목조 호랑이를 보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기가 막힌다는 듯 가게 주인을 쳐다보며 따져 물었다.

 “나는 호랑이를 싫어합니다. 모릅니까?”

 

 가게 주인은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도……정말 몰랐습니다!”

 

 “그럼 오늘 알게 되었군요.”

 종완은 손을 흔들었다.

 “태워버려.”

 

 가게 주인은 두 눈을 똑똑히 뜬 채로 욱사의 하인이 그 호랑이를 꺼내 가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욱사의 곁에 시립해 있던 문국공 댁 도령은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그의 여동생은 범띠였다!

 

 욱 소왕야에게 총애하는 남자가 있는 건 별 문제가 아니지만, 이런 행태를 눈감아 주는 건……그건 아주 문제였다.

 

 문국공 도령은 고개를 돌려 욱사를 보았다. 욱 소왕야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던 말던 안색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어디에도 종완을 막으려는 의사는 없었다.

 

 그럼 장래에……자신의 여동생이 저 집안에 들어간 뒤에 저 종 도련님이 싫다고 하면, 여동생도 불살라버리는 거 아닐까?!

 

 종완은 가게 안의 호랑이와 그 주변의 물건들까지 모두 없애버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기가 좀 낫군요.”

 

 “기억하세요, 저는 말띠입니다.”

 종완은 평온한 어투로 말했다.

 “이후 가게의 물건 가운데 말과 관련 있는 것에는 전부 붉은 천을 걸쳐놓으세요. 들었습니까?”

 

 가게 주인은 부들부들 떨면서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욱사를 바라보았다.

 

 거의 다 됐어.

 

 종완은 욱사에게 눈짓을 보내며 마지막 한마디를 하게 했다.

 

 종완은 욱사가 대사를 까먹을까 봐 아주 간단한 말을 준비시켰다.

 : 아직도 안 끝났어?

 

 그런 다음에 종완이 발뺌하며 억지를 부리고, 두 사람이 시시덕거리는 모양새를 만들어내 문국공 도련님의 속을 뒤집어 놓으면 일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욱사가 입술을 뗐다.

 

 가게 주인은 속으로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간절히 욱사를 바라보았다.

 

 욱사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전부 붉은 천을 걸쳐놓도록 해.”

 

 종완은 격하게 사레가 들렸다.

 

 문국공 도령은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 자신의 물건조차 받아가지 못하고 혼비백산하여 자리를 달아났다.

 

 한 주향 후, 기진헌 내부에는 도자기며 나무 조각이며 구리 주조물이며 크고 작은 말 장식품들은 모조리 붉은색 피풍의를 걸치게 되었다. 그 모습이 아주 용맹하고 위엄이 넘쳐 보였으며, 아주 정신 없었다.

 

 종완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참담한 표정을 지은 채, 피곤하다는 핑계로 기진헌을 나왔다.

 

 마차로 돌아오자, 종완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욱사는 입술을 작게 오므렸다.

 “나는……기억이 잘 안 났을 뿐이야.”

 

 “한마디도 기억 못 해!”

 종완은 무너져내렸다.

 “이제 난 몰라. 며칠 후에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가게 주인한테 그 붉은 천 치우라고 해! 그 사람은 이미 충분히 재수 없었으니까!”

 

 욱사가 말했다.

 “망가진 물건은 내가 모두 물어줄 거야. 그는 한 번에 그렇게 많은 물건을 팔아치웠으니 재수 없는 건 아니지.”

 

 “미치광이와 마주쳤는데 재수 없는 게 아니면 뭐야?”

 종완은 자신이 조금 전 한 말을 떠올리니 온몸이 근질거려, 숨을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나는 정말……조상의 체면까지 모두 갖다 버렸다고.”

 

 그러나 종완은 문국공 도령이 방금 전 지었던 표정을 떠올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돌아가서 반드시 파혼하려고 할 거야. 그때가 되면 너는 순순히 대답하면 되는 거지. 공주께서 가장 많이 탓하는 건 나일 테니, 다른 말은 하지 않으실 거야.”

 

 욱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영왕부로 갔다.

 

 이는 욱사가 어제저녁 종완에게 허락한 것이었다.

 

 욱사는 종완과 함께하지 않고 마차에서 기다렸다. 반 시진 후 종완이 영왕부에서 나왔다. 넋을 놓고 있는 모양새가, 아주 기운이 없어 보였다.

 

 “너…….”

 

 욱사는 그를 몇 마디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욱사는 숙고하여 영왕과 그 아이들은 언급하지 않고, 물음을 던졌다.

 “듣기로는……영왕비가 널 돌봤다며?”

 

 종완은 순간 멍해졌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소했다.

 “맞아. 내가 처음 왕부에 왔던 그때 막 세 살이었는데, 원래 종씨 저택에서 따라온 유모가 날 돌봐줬었어. 유모는 늙어서 눈이 나빠 색도 잘 구분하지 못했지만 예쁜 옷도 많이 만들어줬었지…….”

 

 “왕비께서는 왕부에 온 뒤로 몇 년 동안이나 아이가 없었는데, 그 무렵 왕야께서 나를 양자로 삼으셨어. 유모는 내가 왕비의 눈에 거슬릴까 봐 온종일 나를 방에 가둬놨어.”

 

 “하지만 나는 너무 버릇이 없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 항상 몰래 뛰어나가 놀았어. 불쌍한 유모는 이미 눈이 반쯤 멀어서, 매일을 더듬거리며 나를 찾았어. 왕비를 방해할까 봐 큰소리도 못 내고 내 아명만 소리 죽여 불렀지…….”

 

 “어느 날은 내가 안뜰로 뛰어 들어갔던 모양이야. 유모는 다급해 미칠 지경이라 용기 내서 휘청휘청 안뜰로 들어가 겨우 나를 찾았는데, 그때 때마침 왕비와 마주쳤어.”

 

 욱사는 눈가를 찡그렸다.

 “그래서?”

 

 “왕비께서는 내 얼굴에 묻은 흙과, 어린 아가씨들이 입는 꼬까옷을 입고 있는 걸 보고는 누군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어. 오히려 내가 여자아이인 줄 알았는데, 똑똑히 물어본 후에는 유모에게 나를 데리고 돌아가도록 했어. 그리고 하루가 지나서……왕비께서 우리 방을 내원으로 옮겨주셨어.”

 

 “왕비께서는, 자신은 아이가 없으니 하나를 얻어 키우면 점차 아이가 생길 것이라고 하셨어. 그게 정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나와 유모는 왕비의 내원에서 살게 되었어. 왕비께서는 너그럽고 온화해서 나에게 무척 잘해주셨는데, 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친히 가르치고 자신의 전각에 홀로 들어와 살도록 했어. 유모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나를 돌볼 수 없다면서 말이야. 곧 유모는 나를 왕비의 전각에 남겨두고 편히 요양하게 되었지.”

 

 욱사는 조용히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전에 영왕비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온화하고 착한 사람이었어.”

 

 욱사는 시선을 들어 올려 종완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집안의 어른이 자애롭고 상냥한 데다 지나치게 오냐오냐 키우지 않았으면, 너 같은 그런 성미를 키워낼 수가 없지.

 

 “그럼.”

 종완의 얼굴에는 슬픔 한점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그렇게 좋은데, 몸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 안타깝지. 둘을 낳을 때 곧…….”

 

 종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욱사 역시 알고 있었다. 영왕비는 쌍둥이를 낳을 때 난산으로 작고했다.

 

 “네…….”

 욱사는 종완이 상심하는 것을 바라지 않아, 다른 말을 꺼냈다.

 “네가 방금, 네 유모가 왕부 안에서 너를 찾을 때 네 아명을 불렀다며?”

 

 종완은 고개를 들고 “응”하는 소리를 냈다. 욱사가 그것에 어떻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입술이 바싹 말랐다.

 “맞……맞아.”

 

 욱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아명이 뭔데?”

 

 종완은 경계를 담아 욱사를 쳐다보았다.

 “알아서 무엇하게?”

 

 욱사도 자신이 왜 갑자기 호기심이 들었는지 몰랐다. 그는 부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냥……물어보는 거야.”

 

 “내 아명은……부모님도 유모도 왕비께서도 불렀는데 왕야께서는 나를 그 이름으론 안 불렀어.”

 종완은 불안해하며 욱사를 바라보았다.

 “네가 알게 되면 그 이름으로 부를 거잖아. 그럼 내 웃어른이 되는 셈이라고? 어찌 심사가 그리 악독해?!”

 

 소년 욱사는 종완에게 웃어른만이 아명을 부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건 더 이상한 것 같았다.

 

 욱사는 안색이 갈수록 부자연스러워지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종완은 전전긍긍하다 슬쩍 상대를 떠보았다.

 “그럼 네 아명을 먼저 말해줘!”

 

 욱사는 고개를 저었다.

 “난 아명이 없어.”

 

 종완은 믿지 못했다.

 “그럴 리가? 그럼 아주 어렸을 때 공주와 다른 이른은 널 어떻게 불렀는데?”

 

 욱사가 말했다.

 “그냥 이름을 불렀어.”

 

 종완은 전혀 믿을 수가 없었지만, 욱사가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나도 아명 없어. 방금은 되는대로 지껄인 거야.”

 

 소년 욱사는 진위를 따졌다.

 “네가 조금 전 분명히 있다고 했어…….”

 

 …….

 

 “나는 이후에도 여러 번 물어봤지만, 그는 말해주지 않았어…….”

 욱사는 자신의 방에 있는, 붉은 피풍의를 걸치고 있는 작은 도자기 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물어도 말하지 않았지.”

 

 풍 집사는 실소했다.

 “그때 종 도련님은 성인에 가까웠으니, 당연히 다른 이가 자신의 아명을 부르는 것을 듣고 싶지 않으셨겠지요. 무척 부끄럽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알고 싶었는걸.”

 욱사는 가볍게 그 도자기 말의 머리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가 우는 걸 보고 싶고, 아명을 부르고 싶고……울리면서 아명을 부르고도 싶고…….”

 

 풍 집사는 몸서리치며 속으로 생각했다. 종완은 올해로 스물 몇 살이나 되었는데 그 사람을 아명으로 부르고 싶다니, 이게 무슨 고약한 취미란 말인가.

 

 “지난번에는 울리는 걸 실패했어……아마도 좀 어려울 것 같군.”

 욱사는 들고 있던 화본을 한쪽에 놓아두고 혼잣말을 했다.

 “그럼 먼저 아명부터 물어봐야겠어. 최근 못 짖는 개 쪽은 무슨 동태가 있나?”

 

 풍 집사는 고개를 저었다.

 “들리는 건 없습니다.”

 

 “그를 움직이게 할 방법을 생각해봐.”

 욱사는 눈썹을 치켜뜨며 웃음을 한번 내뱉고는 음산하게 말했다.

 “그 벙어리를 이용해 겁박해서 아명이 도대체 뭔지 대답하게 하고 다음부터 아명으로 부르면 되겠지…….”

 

 풍 집사는 그저 이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예.

 

 


* 역시 광공 비서는 극한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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